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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과 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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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난 쿠바 군을 300m 앞에 두고 아침을 먹네. 내가 있어 국민이 편안한 거야. 너희들이 나라를 약골로 만들었어. 애송아."

해군 변호사로 나오는 톰 크루즈의 풋풋한 모습이 인상적인 영화 '어 퓨 굿맨(A few good men)'엔 법과 군의 갈등 묘사가 생생하다. 관록의 배우 잭 니컬슨은 해병 기지 사령관이다. 전선의 그에겐 죽느냐 사느냐의 전장 물정 모르고 법만 외쳐대는 인간들이 밥맛이다. 일촉즉발의 대치 상태에서 쿠바 군을 향해 사격명령을 내린 것은 야전 지휘관의 고유권한이었다. 따라서 굳이 상부에 보고할 필요가 없다는 게 사령관의 생각이었다.

영화는 사령관의 '상부보고 누락'을 폭로하려던 일등병의 죽음에서 시작된다. 애송이 해군 변호사와 카리스마 강렬한 해병 사령관의 법정 싸움은 법의 승리로 끝난다. 톰 크루즈가 굿 맨인지, 잭 니컬슨이 굿 맨인지에 대해선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것이다.

법은 권력의 한 표현이다. 권력과 군은 나라를 지켜내기 위해 서로를 필요로 한다. 그러면서도 상대를 본능적으로 경계하는 면이 있다.

권력은 군에 의해 자리를 탈취당했던 오랜 기억을 갖고 있다. 합법적인 권력이 쿠데타로 무너진 경험들이다. 노태우 대통령 이래 정상적으로 선출된 민간권력이 17년째 유지되고 있지만 군이 여전히 권력의 최우선 관리대상인 것도 이런 기억과 무관하지 않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군이 스스로 권력화한 역사도 많았다. 그런 권력일수록 군을 견제했다.

반면 군은 생명을 걸고 현장에서 승부를 내는 무력 조직이다. 이기지 않으면 자기가 죽는다. 스포츠 게임과 다르다. 그래서 전장에선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 군의 문법은 정치의 문법과 다르다.

보고누락 사건으로 곤욕을 치르고 있는 해군은 2002년 서해교전 때 햇볕정책 영향 탓인지 안이하게 대응하다가 전사자를 여섯명 낸 작전실패의 교훈이 있다. 해군이 이번에 북한 함정에 엄정하게 대응한 것은 그런 과거에서 배운 바가 컸다. 여기까지는 군이 굿 맨이었다.

문제는 보고 누락의 동기 부분이다. 청와대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철저한 조사를 지시한 것은 행여 권력한테 도전하는 분위기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과거의 기억 때문일 것이다.

전영기 정치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