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러난 고속철 '초고속 부실'원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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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감사원이 지난해 7월부터 71일간 한국고속철도건설공단 등 14개 기관을 대상으로 벌인 경부고속철도 건설사업 집행실태 감사에선 무려 1백1개 항목이 지적됐다.

총체적 '부실' 이 여실히 드러난 것이다.

감사원이 지난 4월 김대중 (金大中) 대통령에게 보고한 '사업비 4조5천2백64억원 축소.누락, 경제성은 물론 채산성이 불투명하며 재원조달 불가능' 부분은 단지 1개 항목에 들어있는 내용일 뿐이다.

'감사 결과 처분 요구서' 엔 우선 공단의 고속철 건설사업관리능력에 강한 의문이 제기돼 있다.

고속철 건설은 일반 토목건설과 달리 노반.궤도.차량.신호.전기.기계등 15개 공정이 함께 하는 복합프로젝트. 공단은 이 프로젝트를 관리할 머리 (頭腦) 인 사업관리전산시스템을 운영하지 않은 채 주먹구구식 사업추진을 해왔다는 것이다.

공단 기술자들은 다른 부문은 어찌되든 내 부문만 열심히 끌고나가는 '초보' 기술자였던 셈이다.

사업관리 담당 직원은 기능.일용직을 포함해 14명 뿐이었고, 그나마 순환보직으로 2년이상 근무한 직원 2명, 컴퓨터 프로그램 운영교육을 받은 사람도 2명 뿐이었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감사원은 공사를 필요없이 서두르다 낭패본 사례, 불필요한 자재를 사들이며 낭비한 사례 등 사업관리 잘못을 여러개 지적했다.

그동안 한곳이 터져 그곳을 메우면 또 다른 곳이 연쇄적으로 터지던 '고속철 혼선' 원인을 일부 밝혀낸 셈이다.

건설교통부도 할 일을 안했음이 드러났다.

국내 최대의 국책사업을 추진하면서도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지원을 못해 야기한 손실이 1천3백85억원. 사업시작 6년후에야 건설기획단을 구성했고, 업무지원을 위해 직원을 파견하면서 승진시험 대상자를 보내 출근조차 안했으며, 총괄 주무과장을 평균 7개월 주기로 바꾸고, 공단이 차량명칭.로고.색상 결정을 제때 하지 않아 손해배상금을 무는 등 공공연한 비용 부당집행에도 건교부는 보고만 있었다는 것이다.

지자체의 비협조도 지적됐다.

당연히 협조해야 할 사항도 미루고 툭하면 트집을 잡으며 '지역이기주의' 챙기기에 바빴다.

감사원은 영동군수 (상촌고가교 업무협의 미흡).육군참모총장 (탄약저장고 안전대책협의 지연).대전광역시장 (역사건축물 건설 협조 안함).안산시장 (행위허가 지연).고양시장 (차량기지 보상심의회 개최 지연).안양시장 (도시계획시설 결정 지연).아산시장 (지적공부 정리 지연).대덕구청장 (개발제한구역내 행위 허가).광명시장 (기존도로 이설공사 조속 추진) 등에 '잘 협조할 것' 을 통보했다.

예산낭비 사례도 많았다.

남서울역 외에 대전.동대구.부산역 신축설계 용역을 발주하며 이미 시행한 천안역사 설계성과품을 활용치 않아 2억3천만원 상당의 용역비를 낭비했고, 천안~대전구간 라멘교량.암거 등 구조물 안전진단용역을 WJE사와 대한토목학회에 일부 중복 발주하기도 했다.

공단은 상리터널.조남1터널 설계부실에 대한 조치를 하지 않고 있다가 추궁을 받았다.

천안역사는 하루 7천1백26명에 불과한 수요를 5만5천4백46명으로 늘려 설계해 2백67억원을 낭비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됐다.

이외에도 팔곡고가교.둔대제3구교 등 교량구조물의 설계 부적정 등 19건의 설계부실도 함께 밝혀냈다.

음성직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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