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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당파 초월한 경제 살리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2주쯤전 홍콩의 초대 입법의원들은 선출 직후 '경제를 생각하는 초당연합' 을 결성했다.

홍콩 경제가 수렁으로 빠져들고 있어 이를 구하는데 힘을 모으자는 취지에서다.

이들은 초당연합이란 이름에 걸맞게 당파를 따지지 않았다.

민주도 반민주도, 친중파 (親中派) 도 반중파 (反中派) 도 없었다.

초당연합 대변인은 '경제에 대한 강한 위기감, 이대로 있다간 큰일난다는 절박함에 쫓겨' 모임을 만들었을 뿐이라고 설립취지를 설명했다.

전체 입법의원 60명 가운데 7개 정파 48명이 참가했으니 사실상 입법원 전체가 가입한 것이나 다름없다.

이들은 의회에서 대안없이 경제위기에 대한 정부의 대책을 다그치기보다 전면 감세 (減稅).정부예산 삭감 등 6개항의 요구안을 만들어 제시하는 등 건설적 접근을 했다.

대표인 알렌 리펑페이 (李鵬飛) 의원은 지난 8일 "이대로 가면 홍콩 경제는 망한다. 긴급대책이 필요하다" 며 재정사장 (재무부장관) 과의 면담을 요구했다.

초당연합은 "6개 요구사항중 하나라도 거부하면 앞으로 행정부는 의회에 아무런 기대도 말아야 할 것" 이라는 으름장도 잊지 않았다.

도날드 창 (曾蔭權) 재정사장은 깜짝 놀라 즉각 회담을 수락했다. 입법원이 이렇게 강경했던 전례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9일 열린 회담은 부드럽게 끝났다. 큰소리도, 삿대질도 없었다.

회담 후 알렌 대표는 "정부는 '노' 라고 얘기하지 않았다.

많은 것이 달라질 것" 이라며 만족해 했다. 도날드 재정사장도 "옛 친구들과 공통 관심사를 오래 얘기한 느낌" 이라고 능청 (?) 을 떨었다.

회담에 참여했던 무소속의 리자샹 (李家祥) 의원은 "이번 회담은 파격적이다.

신중하고 사려깊은 모습을 보여준 정부측 태도는 인상적이었다" 고 평가했다.

대통령은 노구를 이끌고 경제위기극복을 위해 동분서주하는데 당리당략 때문에 원도 구성하지 못하는 우리와 달리 제대로 돌아가는 정치의 한 단면을 보는 느낌이다.

진세근 홍콩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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