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금자보호법 개정후 뭉칫돈 대이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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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고금리를 좇던 뭉칫돈의 흐름이 급격히 바뀌면서 금융기관들이 대책마련에 비상이 걸렸다.

정부의 원리금 전액보장 방침이 수정되고 부실은행 구조조정이 초읽기에 접어들자 이자보다 안전한 곳을 찾아 뭉칫돈이 역류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에 따라 부실은행들은 유동성 부족을 메우기 위해 금융기관을 상대로 한 양도성예금증서 (CD) 판매를 계획하고 있는가 하면, 우량은행은 우량은행대로 주체하기 어려울 정도로 예금이 몰려들어 고민이 많다.

더욱이 신종적립신탁이 시판된지 6개월이 되는 15일부터는 예금을 인출해도 이자 손해가 전혀 없기 때문에 이같은 자금 역류현상이 가속화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 우량 은행 = 돈이 들어와도 운용할 곳이 마땅찮기 때문에 '뉴머니 사절' 이라는 입장이다. 일부 우량은행들은 수신금리를 내리는 방식으로 예금 차단 (?)에 나섰다.

우량 은행으로 꼽히는 국민은행은 최근 한달동안 정기예금 금리를 다섯차례나 떨어뜨렸다.

13일 현재 1년 정기예금 금리는 다른 시중은행보다 최고 1%포인트 가량 낮은 연 15.2% 수준이지만 이달들어 수신고가 7천억원이나 늘어났다.

외국계 은행인 씨티은행도 1년 정기예금 금리는 연 14%밖에 안준다.

국내 금융기관 금리와 비교해볼 때 '예금을 받지 않겠다' 는 얘기와 다름없는 금리지만 그래도 돈을 맡기겠다는 고객들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달들어 신탁계정을 포함한 전체 순수신이 1천7백억원 가량 늘어난 신한은행은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가계 대출금리를 연 18.75%에서 연 18%로 낮췄다.

자기자본비율이야 다소 떨어지겠지만 가계대출이라도 늘리지 않고서는 남아도는 돈으로 발생하는 역마진 때문에 은행 손익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란 판단에서다.

◇ 부실 금융기관 = 돈을 인출하려는 고객들에게 일단 읍소하는 것은 기본이 됐다.

"손님 때문에 멀쩡한 은행이 망할지도 모른다" 는 협박성 애원도 곁들인다.

부실여신이 많은 선발 A은행은 최근 '다른 금융기관에 인수되더라도 예금에는 영향이 없고 만약 외국에 팔리면 훨씬 우량한 은행이 된다' 는 안내장을 고객들에게 돌려 예금 지키기에 나섰다.

최근 합병설이 나돈 후발 B은행은 사내방송을 통해 직원들에게 고객 섭회전략을 철저히 교육하고 있다.

'합병은 곧 예금안전' 이란 점을 고객들에게 적극 선전하라는 내용이다.

C은행은 유동성 부족규모가 하루가 다르게 커져가면서 콜론으로 대처하기가 힘들어지자 한 우량은행에 이자를 2%포인트 더 쳐주겠으니 수천억원대의 CD를 사달라는 제의를 했다.

금융계 관계자는 "예금자보호법 개정과 부실은행 구조조정을 계기로 소수 우량은행에 돈이 몰리는 현상이 뚜렷해지고 있다" 며 "머잖아 일부 부실은행의 경우 심각한 유동성 부족사태를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고 말했다.

박장희.김소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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