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전공 생각 섞으니 ‘비빔밥 아이디어’ 쑥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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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에너지 절약 교육 온라인 게임 실생활의 에너지 생성·소비량을 온라인 게임으로 구현. 전기 쓰면 괴물 캐릭터가, 아끼면 전사가 생성되는 방식.

전기 사용량이 많아지면 온라인 게임에 괴물 캐릭터가 늘어난다. 반면 창가에 설치한 태양광 발전기가 에너지를 만들면 괴물을 물리칠 전사 캐릭터가 생성된다. 에너지 절약의 중요성을 배울 수 있는 교육용 게임의 일종이다. 에너지 사용과 생성 정보를 아이들이 좋아하는 ‘온라인 롤플레잉 게임(MMORPG)’에 연계한다는 아이디어다. 실제 전기 사용량 등은 무선통신을 통해 온라인 게임으로 전달되는 방법이다. “인기 만화 캐릭터를 도입하면 일반 게임 못지않게 인기를 끌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대학원생 한창진(25)씨의 발표가 끝나자 교수와 학생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박수를 쳤다.

17일 경기도 수원시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융합대학원) 캠퍼스. 전공필수 과목인 융합과학기술개론 수업의 아이디어 발표회에선 통통 튀는 아이디어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를 닦는 동안 충치균을 검출해주는 칫솔, GPS를 활용한 시각 장애인용 물체 감지 시스템, 발화 지점을 찾아가 불을 끄는 소화기…. 32명의 학생이 8개 조로 나뉘어 3개월 만에 완성한 아이디어들이다. 올 초 개원한 융합대학원은 과학·기술 융합을 내세운 국내 첫 정규 대학원이다.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안나(철학·생명과학), 이태권(재료공학), 한창진(언론정보학), 조민수(전자전기공학), 여명숙(철학-지도박사), 권준호(컴퓨터공학-지도박사, 학과는 학부 때 전공). [수원=박종근 기자]


◆다른 전공이 뭉치니…=“전공이 다른 학생들이 모이니 기상천외한 아이디어가 나오더군요.” 융합과학기술개론을 맡은 강남준(언론정보학) 교수의 말이다. 32명 대학원생의 학부 전공은 각양각색. 5명은 이과대를, 16명은 공대를 나왔다. 나머지 11명은 인문·사회·사범대 출신이다. 의류학과를 나온 대학원생도 있다. 온라인 게임을 발표한 한창진씨 조도 마찬가지다. 학부로 언론정보학과를 나온 한씨 외에 재료공학·철학(생명과학 복수전공)·전기공학과 출신의 대학원생으로 구성됐다. 프로젝트를 지도한 여명숙 박사와 권준호 박사는 각각 철학, 컴퓨터공학 전공이다. 인문·사회대 출신 학생들이 전체적인 개념을 짜면 공대 학생들은 실현 가능성을 타진해 게임 설계 방향을 잡았다. 10여 년간 전자회사에 다니다 대학원에 진학한 이태권(40·재료공학 전공)씨는 “처음 게임 개념을 잡을 땐 ‘왜 이렇게 황당한 얘기를 하나’ 하고 생각했다”며 “얘기를 나누다 보니 나도 생각의 폭이 넓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여 박사도 “온라인 게임에 생명 철학을 담자는 아이디어는 좋았지만, 기술적인 검토가 즉각적으로 뒷받침되지 않았다면 생각에 그쳤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조 역시 융합의 힘을 실감했다. 이·공계 출신 대학원생 3명과 함께 건강검진용 비데를 설계한 최지윤(24)씨는 서어서문학과 출신이다. 이공대 출신 학생들은 자료를 검색해 어떤 기술을 비데에 적용할지를 찾았다. 사용 고객의 연령을 잡고, 측정치를 모바일로 전송해 관리하게끔 하자는 큰 틀을 내놓은 건 최씨다. 팀을 지도한 김재훈(34·물리학) 박사는 “공대생들만 모여 있을 때보다 확실히 시야가 넓어졌다”고 말했다.

처음부터 아이디어가 활발하게 나온 건 아니다. 대학원 측은 전문 컨설팅 업체에 의뢰해 학기 초 3주 동안 발상력 훈련을 했다. 전혀 다른 사물 간의 공통점을 찾고, 즉석에서 생각나는 아이디어를 표출하는 식의 훈련이었다. 디지털정보융합과 조민수(32)씨는 “훈련 초기엔 생각을 표현할 때 주저하는 편이었는데,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향상됐다”며 “이 과정에서 공대생과 인문대생 사이의 벽도 많이 허물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기업체도 주목=이날 발표회에 나온 아이디어 중 일부는 벌써 상업화 단계를 밟고 있다. 에너지 절약 교육 게임은 융합기술원이 상업용 게임으로 개발하기로 했다. 또 다른 조가 발표한 ‘휴대용 유전자 분석기’도 교수들로부터 “기술을 다듬어 특허 출원을 해 보라”는 권유를 받았다. 대학원의 융합 교육에 관심을 갖는 기업과 기관도 늘고 있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은 지난달 박사급 연구원 12명을 파견해 8주 교육과정을 이수하게끔 했다. 강 교수는 “KT 같은 대기업도 교육 문의를 해 오고 있다”며 “성과가 축적될수록 다양한 산학협력 과제도 수행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임미진 기자 , 사진=박종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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