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장 서까래를 치면 기둥이 운다 ②
주문진에 당도한 것은 오후 3시 무렵이었다.
유월 초순이었는데도 기후는 벌써 한여름이었다.
오징어철을 맞아 북새통을 이루고 있는 선착장의 활어난전 어름에는 철이른 뙤약볕이 내려 쪼이고 있었다.
따가운 햇살을 가리기 위해 쳐둔 푸른색 차일막들이 활어난전의 행렬을 따라 선착장 가녘을 따라 길게 뻗어 있었다.
목청을 뽑아 호객하는 소리들은 차일막 안에서도 여전했다.
우루과이 라운드의 넋두리를 쑥 들어가버리게 만든 아이엠에프의 맵짜고 독한 불황에도 바닷가 사람들은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활력을 잃는 법이 없었다.
산골 사람들처럼 쉽게 좌절하거나 절망하지 않았다.
하루의 수확과 하루의 삶이 긴장감 있게 연결되어 있는 어부들의 생활은 그들 내면의 삶에까지 깊숙하게 젖어들어 하루하루를 덧없이 보내지 않게 만든다.
길모퉁이에 쭈그리고 앉아 수근거리고 있거나 척박한 삶을 남의 탓으로 헐뜯고 있는 사람들은 없었다.
그런 풍경을 보여주고 있는 바닷가에 다시 돌아왔기에 승희는 고향처럼 와락 반가웠다.
묵호댁은 예상했던 대로 돈 문제에 있어선 음흉한 구석이 없는 여자였다.
승희가 가게를 비운 동안 장사한 내막을 거울속을 들여다 보는 것처럼 소상하고 명료하게 장부책에다 적어 놓고 있었다.
현금수금과 외상금액을 가름한 것도 명확했다.
단골들만 긋는 외상도 승희가 있을 때보다 오히려 적은 편이었다.
단 한가지 그녀가 없을 동안 대담하게 안방을 사용한 흔적이 뚜렷했지만, 못 본척 따지지 않았다.
묵호댁에게 안방을 내준다 해도 가게채를 몽땅 떠메고 잠적할 수도 없을 터이고, 그런 음흉한 속셈도 없는 여자란 신뢰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박봉환의 행방에 대해선 두 여자가 서로 입을 맞춘 듯 승희가 먼저 묻지도 않았고, 묵호댁이 서둘러 해명하려 들지도 않았다.
그렇지만 봉환의 행방이 묘연한 것은 아니었다.
그 시각에 봉환은 철규의 자취방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자취방에 모인 한씨네 행중도 이마를 맞대고 4개월 동안이나 미뤄두었던 손익계산을 따지고 있었다.
계산기와 속셈과 기억력까지 총동원된 계산이 진행될 동안 어느 누구의 입에서도 허튼소리가 없을 정도로 긴장감이 감돌았다.
모두들 이마에는 땀이 흐르고 있었다.
장차의 진로나 운명이 그 결과에 달려 있다는 절박한 사정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애당초 비관적인 결과를 예단한 사람은 윤씨였다.
그것은 어림짐작으로도 손해라는 것을 예측하였기에 장날마다 수지계산을 따지지 않고 지나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헛고생만 한 것이 드러난다 하더라도 행중 모두를 두둔하고 있는 사람은 변씨뿐이었다.
하지만 그런 어쭙지않은 언행이 윤씨에겐 전혀 설득력이 없었다.
그래서 태호의 손에 들려 있는 계산기를 핑계있을 때마다 호들갑스럽게 낚아채는 사람은 윤씨였다.
그러면 눈이 벌겋게 상기된 변씨는 윤씨를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며 면박을 주었다.
"이봐, 윤가야. 솥에 삶은 팥은 아무리 퍼져도 솥 안에 있게 마련이고, 미주알이 빠져도 고쟁이 속에 있다는 속담 못들어 봤어? 우리 행중에 어떤 놈이 생돈을 꿀꺽 삼켜버렸을까봐 안달이 나서 딴죽을 걸고드나? 계산기가 니 손에 가면, 십만원 짜리가 백만원 짜리 되는 둔갑조화라도 부리나? 자발없게 나서지 말고 칠칠찮은 이마에 땀이나 닦어. " 그러나 모두들 얼굴에 생기가 돌았던 것은 계산을 따지기 시작해서 3시간이나 흐른 뒤였다.
딱부러진 계산은 아무래도 불가능했지만, 숙식비와 유류대까지 지출하고도 5백만원에 육박하는 순이익이 있었다는 것은 확실했다.
당장 지니고 있는 현금은 보잘 것이 없었지만, 진부령 황태덕장에서 구입해온 해태에 이익금이 포함되어 있는 셈이었다.
그러나 4개월 동안의 행상길에 객고를 치른 인건비는 계산에 넣지 않았다.
하지만 강원도에서 손꼽히는 큰장터에서 명태장수 한씨네 행중이란 이미지를 심어준 것은 계산으로 따질 수는 없는 이익이었다.
손익계산의 접근법에 대한 철학성은 바로 그런 점에 있었다.
김주영 대하소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