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북한 이홍구 칼럼

통일을 향한 결단의 시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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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앞으로 3년 후인 2012년 11월이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재선 여부가 판가름날 것이고, 중국의 후진타오 국가주석은 후계자에게 자리를 넘기게 된다. 12월에는 한국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후임자를 선출하는 대통령 선거가 실시된다. 결코 길지 않은 향후 3년은 오바마·후진타오·이명박 세 지도자들이 역사에 족적을 남길 수 있는 중요한 시기가 될 것이다. 그 어떤 국가 지도자도 짧은 정치 생명 탓에 유구한 역사와의 경주라는 숙명적 굴레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지금이, 그리고 향후 3년이 ‘결단의 시기’라고 생각하는 것은 한국·미국·중국만이 아니라 세계적으로 공통된 현상이다. 세력균형의 판도가 바뀌고 새로운 국제경제 질서의 창출이 불가피하게 된 역사적 전환기를 맞아 세계 각국은 예외 없이 생존을 위한 적응 경쟁에 돌입했다. 이런 가운데 북한만이 통상적 흐름과는 반대로 기존 입장을 고수하겠다며 상식과 관례를 뒤엎는 충격적 전략으로 국제사회를 비상사태로 몰아넣고 있다. 그러기에 한국·미국·중국 세 나라는 중대한 결단의 시기를 맞게 된 것이다.

북한이 이렇듯 관련 국가들에 결단을 강요하는 초강수를 두게 된 것은 체제와 상황의 논리로 충분히 설명될 수 있다. 역사적 전환기는 생존을 위한 체제의 변화를 요구한다. 그러나 북한은 변화·개혁·개방에 대한 거부를 체제 유지의 필수요건으로 고착시켜 국제사회에서 고립을 자초하고, 드디어 고사(枯死)의 위기에 몰리고 있다. 선택의 여지가 없는 외길을 고집하다 궁지에 빠지고 보니 지난 60여 년을 지켜온 기본 목표, 즉 한반도를 북한 지도자의 영도 아래 통일하겠다는 목표를 위해 모든 위험을 무릅쓰고 핵무기 보유와 미사일 개발이란 모험을, 아니 큰 도박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아시아 대륙의 대부분을 러시아·중국·베트남·북한 등 공산정권이 통치하는 지정학적 압력, 군사력의 우월성, 남한에서의 정치적 혼란과 친북세력의 규모 등을 감안할 때, 한반도 남부에서 유일한 자유민주국가로 번영하고 있는 대한민국을 도저히 용납하지 못하고 북한 주도의 통일이 역사의 순리라고 믿었던 김일성의 꿈이 60년 동안 북한 왕조체제를 정당화해 왔다. 이러한 통일의 꿈을 가로막아 온 유일한 장벽이 한·미 군사동맹에 의한 주한미군의 존재라고 단정하기에 지금의 핵무기를 앞세운 대모험도 결국 미군 철수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이다. 북한 외무성의 성명대로 미국과의 수교나 경제 원조를 바라서 핵무장을 하는 것이 아니다. 핵무기 보유국으로서 미국과 대등한 위치에서 전략무기 감축이나 평화조약 체제 수립을 추진함으로써 한반도에서 미국의 군사력을 제거하고, 이를 통해 북한 주도의 통일을 실현하겠다는 것이다.

다행히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 그러한 북한의 돌출적 위협에 대해서는 강력히 대응하겠다는 미국의 뜻이 재확인됐다. 미국이 북한의 대모험을 허용한다면 오바마 대통령이 야심적으로 출범시킨 미국의 새로운 외교전략의 수행은 출발부터 힘들어진다는 인식이 깊어지고 있다. 이란 문제를 포함한 중동·이슬람 정책이나 러시아와의 전략무기 감축 협상을 포함한 새로운 비핵화 노력이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미·중 간의 전략적 대화를 핵심으로 한 새로운 대북정책의 추진이 불가피한 선택으로 부상되고 있다.

한편 결단의 시기에 임하는 중국의 입장은 보다 복잡한 이해타산 속에서 기로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향후 3년 북한의 모험을 계속 방치한다면 결국 중국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핵무기와 미사일로 무장된 한반도를 수용하는 셈이 된다. 정치·경제·군사 등 여러 면에서 초강대국으로 부상해 아시아공동체 건설에도 앞장서겠다는 중국이 과연 그러한 수동적 입장을 택할지 여부는 진정으로 역사적 선택이 될 것이다.

북한의 위협과 모험에 대한 한국의 입장은 우리 특유의 이중성을 내포하고 있다. 긴장의 고조가 한반도 평화를 위협하지나 않을까 걱정하는 것이 한국인의 일차적 반응이지만 다른 한편, 북한이 추진하는 일련의 무리한 강수는 드디어 민족 통일을 향한 돌파구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엿보게 한다. 그러기에 우리는 오늘의 사태 진전을 마냥 두려워하기보다는 오히려 반기면서 새로운 통일외교의 추진과 민족공동체 통일 방안의 보완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분단 64년째를 맞는 한반도가 역사의 예외지대라는 굴레에서 해방될 가능성이 보이기 시작한 향후 3년은 분명 결단의 시기가 될 것임에 틀림없다.

이홍구 전 총리·중앙일보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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