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성보경의 M&A 칼럼

산업은행, 국제 기업사냥꾼과 밀월여행?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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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한국의 M&A시장에서 가장 매력적인 M&A 대상 기업은 단연코 한국산업은행이다. 산업은행은 세계적으로 보더라도 가장 매력적인 인수 대상 1순위의 특수은행일 것이다. 산업은행의 경영권을 지배할 수 있다면 한국의 핵심 기업들에 대해 직접적 또는 간접적으로 경영권을 지배하거나 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지위를 확보하는 것은 명약관화한 일이다.

산업은행은 한국토지공사·한국관광공사·한국자산관리공사·한국수자원공사·한국전력·한국항공우주산업 등 공기업의 지배주주이며, 대우증권·중소기업은행·대구은행·신한지주·하나금융지주·대우조선해양·STX·STX팬오션·STX엔진·현대건설·두산중공업·현대상사·SK네트웍스·대우인터내셔널·하이닉스·동부제강·쌍용양회·남한제지·아시아나항공 등의 경영권을 지배하거나 경영권 간섭이 가능한 대주주 지위를 확보하고 있다. 이외에도 한국의 중요 산업을 담당하고 있는 대부분의 기업들에 주요 설비자금을 대출해 주는 조건으로 담보권을 확보하고 있어 해당 기업의 경영상황에 따라서는 경영 지배권과 주거래 은행으로서의 지위를 행사할 수 있다.

지배주주 또는 소수주주의 지위를 차지하면 주주에게 부여된 강력한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 회계장부의 열람 및 등사 청구권, 주주제안권, 임시주주총회소집청구권, 이익배당청구권, 잔여재산분배청구권, 이사의 위법행위유지청구권, 대표소송권, 회사의 해산청구권, 이사 또는 청산인의 해임청구권 등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게 되는데, 산업은행과 같은 강력한 은행이 권한을 행사한다면 경영권은 심대한 위협을 받게 될 것이다. 특히, 국제적으로 악명이 높은 기업사냥꾼들이 산업은행과 협력한다면 산업은행과 같은 특수은행이 기업사냥꾼으로 변신할 우려도 있다.

미국의 허먼 상원의원 보고서에 나타난 것과 같이 세계는 국제 투자금융 자본가들에 의해 거대 다국적기업에 대한 실질적인 지배구조가 형성되어 있다. 한국의 경제모델이 미국과 같은 카지노 자본주의의 늪에 빠지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공공성이 높은 핵심 기업들이 민간 투자금융 자본가들의 지배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 KKR(Kohlberg Kravis Roberts & Co.)은 사모펀드와 차입매수를 활용한 M&A 전문회사로 적대적 M&A도 서슴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표적인 게 1988년에 차입매수(LBO)에 의한 적대적 M&A로 거대 다국적 식품담배회사인 나비스코(RJR Nabisco, Inc)의 경영권을 장악한 내용이다. 311억 달러에 나비스코를 사들인 이 사건은 『경영권을 노리는 야만인들(Barbarians at the Gate)』이란 책으로 소개되면서 더욱 유명하게 되었다.

KKR은 이외에도 M&H(Malone & Hyde)를 LBO를 활용한 공개매수 방식으로 인수하였고, 베인 캐피털과 메릴린치와 공동으로 병원 관리회사인 HCA 역시 LBO로 인수하였다. 최근에는 TPG 캐피털과 골드먼 삭스와 연합하여 443억 달러에 달하는 TXU를 역시 LBO 자금을 동원하여 인수했다.

KKR을 설립한 헨리 크래비스는 대표적인 유대인 금융자본가로 ‘국제 투자금융계의 하이에나’로 불리기도 한다. KKR이 운영하는 사모펀드에는 부패한 권력이 조성한 자금이 포함되어 있다는 얘기도 나돈다. 이 KKR이 한국 기업에 대한 M&A 시장 참여를 선언했다. KKR은 산업은행이 추진하고 있는 기업 구조조정 펀드를 통해 상호 업무협력을 위한 협약을 체결했다.

산업은행과 KKR은 중장기적인 파트너십을 유지하면서 한국에 강한 투자 및 M&A팀을 만들고, 산업은행의 M&A 투자 기업의 정보력과 자금 조달능력을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공동 투자 및 공동 출자 펀드를 설립하여 국내외에서 협력을 강화하겠다고 선언했다. 본래 산업은행과 같이 산업계에 대한 지배력이 강한 특수은행이 공격적이거나 수익을 추구하는 M&A 업무를 추진하는 것은 반칙이다. 특히, 국제적인 기업사냥꾼 집단과 공동으로 M&A나 기업 구조조정 업무를 한다는 것은 혹 M&A 대상이 될지도 모를 기업 경영자의 입장에서 보면 공포스러운 일이다.

몇 년 전 기업사냥꾼 칼 아이칸이 KT&G를 공격했던 사례에서 본 바와 같이 국제 기업사냥꾼들은 5% 정도의 지분만 확보해도 경영권 간섭을 비롯하여 소수주주가 얻을 수 있는 모든 이권을 요구하기 위해 경영권 분쟁을 유도한다. KKR은 칼 아이칸보다 훨씬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 KKR은 정부 권력까지 움직여 이득을 취득하는 데 세계 최고의 전문가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적대적 M&A에 의한 경영권 장악도 수시로 해낸다. 한국에서 논란을 빚고 있는 LBO를 이용한 M&A의 전문가이기도 하다. 국제 투자금융의 실체에 대해 모르는 한국의 경제 관료 또는 통치자들이 KKR과 같은 프로선수들의 덫을 어떻게 피해갈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프론티어 M&A 회장 merger@merg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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