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것이 좋다…소비에 부는 '미니바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4면

'작은 것이 좋다!' 미니.꼬마.땅콩 등의 별명이 붙은 작은 것들이 사랑받고 있다.

경제한파로 인해 생활전반에 축소지향의 심리가 깔리면서 '작고 옹색한 것' 이 '귀엽고 경제적인 것' 으로 이미지 변신을 하고 있는 것. '큰 것이 좋다' 던 소비심리에서 거품이 빠져나가고 있는 셈이다.

경기도 분당시 행운중개사사무소 정양주대표는 "최근들어 소형평수만을 찾는 고객들이 대부분" 이라면서 현재 32평과 49평형의 전세가격이 6천5백만~7천만원대로 같은 수준이며 국제통화기금 (IMF) 체제이후 거래된 아파트의 80~85%가 32평이하의 소형이라고 밝혔다.

중대형이 잘 팔리던 자동차도 마찬가지. 작년 상반기 국내에서 팔린 자동차 중 경차는 6%꼴. 그러나 올들어 4월까지 팔린 경차의 비율은 약30% (총 14만9천여대중 4만4천7백여대) 로 5배정도 늘어났다.

소형화 추세는 몫돈을 줘야하는 덩치 큰 물건에서만이 아니다.

부수적인 생활용품들도 미니형으로 바뀌고 있다.

경제위기이후 전반적으로 가구를 사들이는 가정이 줄어들었지만 미니 장식대.협탁.틈새 공간을 이용하는 박스정리함이나 코너선반.접는 의자 등은 꾸준히 잘 팔리고 있다.

한 통신업체는 "특히 작은 공간에서 두가지 용도를 다 만족시킬 수 있는 침대겸용 소파의 경우 매달 3백여개씩 팔려나간다" 고 말했다.

미니가구 전문업체인 마니또가구 (경기도 고양시 동산동) 의 경우 올 3월까지 매출이 30%이상 늘어났을 정도. 장식용 액자에 대한 취향도 달라졌다.

롯데백화점 액자코너의 김병란씨는 "이전엔 10만원 이상의 대형액자를 찾곤 했으나 최근에는 1만원이하 소형액자를 찾는 이들이 60%가 넘는다" 고 들려줬다.

"요즘은 왠지 큰 제품이 부담스럽게 여겨진다" 는 주부 김숙현씨 (43.서울양재동) 는 "대형 가죽 소파가 낡아 2인용 천소파로 바꿨더니 공간을 크게 차지해 위압적인 느낌이 강했던 실내 분위기가 아늑하게 바뀌었다" 고 말하기도. 미니 바람은 사치와 화려함의 영역인 멋내기에서도 어김없이 불고 있다.

'난장이' 화장품들은 변화와 다양함을 좋아해 싫증을 금방 느끼는 신세대들을 겨냥해 몇년전부터 만들어졌으나 최근들어 국제통화기금 (IMF) 상품으로 더욱 인기를 끌고 있다.

예컨대 립스틱 하나를 살 값에 3가지 미니 립스틱을 살 수 있다는 '경제성' 이 주목을 끌게 된 셈. 또 한가지 색상만을 바르기 보다 여러색을 조합해 쓰거나 이것저것 바꿔쓰며 개성미를 살릴 수 있다는 점도 미니바람에 한 몫을 하고 있다.이런 붐을 타고 중소 화장품업체들은 '땅콩매니큐어' , 작은 트윈케이크 등 소형제품들을 잇달아 내놓으며 이 틈새시장을 공략하는데 열을 올리고 있다.

주부 박재홍 (43.인천시 산곡동) 씨는 "예전에는 3~4색이 한꺼번에 담긴 아이섀도우를 살 수 밖에 없었으나 요즘에는 작은통에 담긴 원하는 색상만 싸게 살 수 있어 경제적" 이라며 꼬마화장품들에 만족을 표시. 이같은 축소지향의 현상에 대해 이화여대 이동원 (사회학) 교수는 "고속 경제성장과 체면문화가 맞물려 그동안 생활전반에 필요 이상의 거품이 스며들었으나 최근 사회위기와 경제성.상품 마케팅.미디어의 홍보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사회분위기를 바꿔가고 있다" 며 "각자의 수준에 맞는 물건을 쓰는 생활태도가 이번에 정착된다면 전화위복의 계기가 될 것" 이라고 말했다.

고혜련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