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몰락하는 중산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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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19세기 영국 역사학자 토머스 칼라일은 경제학을 '우울한 과학' 이라고 불렀다. 칼라일의 말대로 경제학자들이 전하는 메시지는 주로 인간에게 어려운 선택을 요구하는 것들이다.

개중엔 선택의 여지라곤 없이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저주' 도 들어 있다.

한스 - 페터 마르틴과 하랄트 슈만이 '세계화의 덫' 에서 상정한 세계는 대다수 사람들에게 저주다. 세계화는 자본가들에겐 국경을 넘나들며 모든 장벽을 열어젖히는 진보와 발전이지만, 노동자들에겐 세계를 상대로 무한경쟁을 벌여야 하는 힘겨운 전쟁이다.

이 전쟁에선 대다수 사람들이 패배하며, 살아남은 소수조차 다음 전쟁을 대비해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 마르틴과슈만은 세계화가 '20대80의 사회' 를 가져올 것이라고 예측한다.

사회의 20%만이 좋은 일자리와 안정된 생활 속에서 자아실현을 할 수 있으며, 나머지 80%는 실업 또는 불안정한 고용상태에서 20%가 생산해내는 부 (富)에 빌붙어 살아야 한다. 중산층은 사라져버리고 사회는 소수의 부유계층과 대다수 빈곤계층으로 양분 (兩分) 되고 만다.

최근 IMF 경제위기 속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사회의 양극화현상이다. 금융자산을 가진 부유층은 고금리 혜택을 만끽하고 있다.

전반적인 내수위축 속에서도 이들을 상대로 하는 특수업종은 호황이다. 반면 중산층은 부동산가격 폭락.임금삭감.실업 등으로 자산과 소득이 모두 감소하는 이중 (二重) 디플레이션으로 고통받고 있다.

특히 화이트칼라 계층은 기업도산.구조조정으로 인한 실업이 급증하고 있다.

중산층몰락은 소비위축.공급과잉의 경제붕괴로 이어지며, 이는 곧바로 정치.사회적 위기로 확산된다. 60년대초 20%에 불과했던 중산층은 90년대 중반 50%를 넘었으며, 자신을 중산층이라고 생각하는 중산층 귀속의식을 가진 계층까지 합하면 70%에 달한다.

경제성장과 사회안정의 근간 (根幹) 인 중산층의 중요성은 재론할 필요가 없다. 며칠전 금융연구원 보고에 따르면 IMF관리체제 이후 빈부격차가 확대되고 있으며, 특히 중산층이 몰락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IMF 경제위기가 사회통합에까지 악영향을 미치기 시작한 것이다. 중산층의 꿈이 하루아침에 무너진 데 대한 이들의 '억울하기 짝이 없는 심정' 은 가볍게 보기엔 너무도 심각한 사회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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