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안학교 탐방 ⑧] 치유대안학교 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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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지하철 2호선 봉천역 부근의 가로변 빌딩 3층. 도심형 대안학교 '별'이 자리한 공간이다. 너른 운동장도, 국기게양대도 없지만 문을 열고 들어서자 마침 점심시간이라 방방마다 터져나오는 학생들의 재잘거림이 이곳이 '학교'임을 확인시킨다.

▶ 도심 건물의 한 개 층에 마련된 대안학교 ‘별'의 입구.

2002년 문을 연 '별'은 자칭 '치유적 대안학교'다. 집단따돌림.스트레스.가정불화 등 학교와 가정에서 학생들이 입은 이런 저런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겠다는 취지다. 자연히 커리큘럼도 '사회와 놀자''수리야 놀자''미디어 국어''영어와 놀자'등 교과중심의 과정 못지 않게 '집중력 훈련''깨달음의 교육-낙관주의'등 심리프로그램과 '별들의 작은 공연'(연극)'오감 키우기'(원예) 등 정서프로그램에 큰 비중을 두고 있다.

특히 사람의 성격을 9가지로 유형으로 분류하는 심리분석 기법인 '애니어그램'이 아예 주요 과목으로 들어있다. 이은재 교사는 "자신과 부모 등 주변 사람의 성격을 각각 분석하면서 학생들 스스로 이래서 갈등과 충돌이 생길 수 있었다는 것을 납득해 가는 데 효과적인 과정"이라고 설명한다.

▶ 학생들의 공동작업물이 전시돼 있는 대안학교 ‘별'의 내부.

단원별로 테마를 정해서 학생들 스스로 연구를 진행하는 '프로젝트 수업'도 별의 독특한 교육과정 중 하나다. '시장''꽃과 우리들''달리면서 배운다'등 테마의 폭도, 형태도 넓다. 중요한 것은 학생들이 각자의 연구내용을 서로의 교사가 되어 발표하게 한다는 점이다. 직업교육 과정인 '꿈을 갖자-서비스 러닝'같은 과목은 학교건물 주변에 개업하고 있는 빵집주인.한의원 원장 등과 메이크업아티스트.방송국 PD등 학생들이 궁금해하는 각종 직업에 실제 종사하는 사람들을 강사로 초빙, 문답형태로 진행돼 특히 인기를 끌었다.

▶ 대안학교 ‘별'의 수업 풍경. 성교육 수업'천생연분'의 마지막 시간으로 학생들이 주어진 상황에 대해 저마다 상담 강사가 된 입장에서 답변을 고민하고 있다.

학생들의 참여를 중요시하는 이같은 수업방식은 마침 이 날 오후 열린 성교육수업'천생연분'에서도 엿볼 수 있었다. 청소년문제 전문가인 외부강사가 나눠준 종이에는 이성교제에서 벌어질 수 있는 몇 가지 갈등 상황이 예시돼 있다. 그 위에 적힌 지시문은 이렇다. "성교육 과정을 마친 여러분도 장차 훌륭한 성교육 상담가가 될 수 있습니다. 다음의 몇 가지 예견되는 질문에 적절하게 답해 보세요. 좋은 상담을 해준 친구를 청소년 성교육 또래 상담가로 임명합니다."

실제 상담자가 된 듯한 말투로 또박또박 답변을 내놓은 주희(17)와 수업이 끝난 뒤 따로 이야기를 나눴다. 주희는 작년 6월 다니던 학교를 자퇴한 뒤 주변의 권유로 인터넷에서 정보를 얻어 이 학교를 찾았다. "문제가 많았어요. 아이들과 싸움이 그치지 않았고요. 수업중에는 핸드폰을 하거나 이어폰으로 음악을 듣다가 수시로 혼났죠. 다른 아이들도 힘들었겠지만, 저도 참 힘들었어요. 지금이요? 많이 나아졌죠. 특히 대인관계가 좋아졌어요. 예전에는 선생님과 친해질 기회가 없었는데 여기서는 대화를 참 많이 해요. 제가 이 중에 비교적 나이가 많은 편인데, 신입생이 오면 먼저 가서 말을 걸고 영화구경.책방나들이 활동을 같이 하면서 언니같은 역할을 하기도 하고요." 주희는 검정고시를 준비하는 한편 장래에는 제빵기술자가 되고 싶단다.

▶ 대안학교 ‘별'의 학생들이 저마다의 크고 작은 목표를 적어놓은 ‘우리들의 목표나무'. 수업중 진행된 프로그램 중 하나다.

반면 동열(15)이는 모두가 성교육 강의를 듣고 있는 동안에도 다른 교실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1학기 종강을 기념해 다음날 열리는 발표회에 내걸 그림이라서 사전에 수업을 듣지않아도 된다는 허락을 받았다고 했다. 동열이 역시 먼젓번에 다니던 학교를 자퇴한 지 1년쯤 됐고, 다른 기관에서 상담치료기간을 거쳐 이 학교에 입학한지 넉 달쯤 됐다. "학교가 무지 싫었죠. 온갖 쌍욕을 다 할만큼. 저도'별'이 좋긴 해요. 다른 사람과 어울릴 수 있고, 보통학교 보다 덜 기계화돼있으니까. 여기에도 약간의 규율과 규범은 있어요. 그런 걸 통해서 일반 사회와 융합하게 하려는 목적이죠. 근데 저를 보고 이 학교를 판단하지는 마세요. 저는 여기서도 아웃사이더니까요. " 아웃사이더를 자처하는 동열이는 글이든 그림이든 예술가가 되는 게 꿈. 일단은 "폭넓은 공부를 위해" 일반고교에 복귀할 생각이 있지만, "소모적인 과정이란 생각이 들면 다시 때려칠 것"이라고 했다.

이처럼 먼저 학교의 대인관계에서 저마다 어려움을 겪었던 학생들이라서인지 역으로 인간관계를 '별'에서 가장 만족스러운 점으로 꼽는다. 다섯 칸으로 나뉜 학교 공간 가운데 교무실 격인 방에 학생들은 스스럼없이 드나들며 수시로'선생님'을 불러댔다.

이곳의 상근교사는 모두 5명. 이 중 2명이 교육학 전공자이고, 다른 2명은 사회복지 전공자인 것도 여느 학교와 다른 점이다. 교사들은 매 학기마다 머리를 맡대고 새로운 교과과정을 기획하고, 학기말에는 평가회를 거쳐 이를 다듬는다. 방학기간에는 다른 대안학교나 대안교육에 관심있는 일반인을 대상으로 교사양성과정도 운영한다. 외국어 등 교과과목에는 외부 강사들이 자원봉사자로 참여한다. 김현수 교장은 학교와 같은 건물에서 신경정신과를 운영하는 전문의다. 직업상 마음의 상처를 앓는 청소년들을 여럿 대하다 보니 학과공부 보다 마음치유가 먼저라는 것을 절감하고 사재를 털어 이 학교를 시작했다.

현재 '별'의 학생들은 25명. 나이는 14~20세다. 몇 몇 학생들은 정신과 치료와 학교생활을 병행하는 중이다. 학과과목 등 대부분의 수업은 소그룹 단위로 나눠 진행되고, 검정고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은 해당기간에 방과 후 별도의 지도를 받는다. '별'을 거쳐 다시 일반 고교에 다니게 된 학생도 있지만, 이미 성인의 문턱을 넘어선 학생들은 다른 방식으로 사회에 적응해야 한다. 다른 사회기관과 공조해 이네들이 설 자리를 마련하는 것 역시 '별'의 장기적인 숙제 가운데 하나다. 학비는 점심 식대를 포함, 월 25만원이지만 실제는 학생들의 형편에 따라 차등적용된다. 입학은 상담을 거쳐 수시로 가능하다.

'별'도 재정문제가 고민이다. 최근 교육청에서 학력인정 학교로 전환하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았는데, 남의 건물 한 층을 임대해 쓰고 있는 형편이라 기준에 못미친다. 독립된 건물을 마련한 재원조달을 위해 시민들의 후원을 모으고 있다. www.schoolstar.net 02-888-8069.

이후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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