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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계도 한류 바람 … 매년 수백 명씩 외국 의사 몰려온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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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지난달 18일 오전 8시 서울아산병원 간이식센터 수술실. 이 병원 이승규 교수의 간이식수술이 시작됐다. 51세 남자 간암 환자에게 딸(21)이 일부 간을 제공하는 생체 간이식수술이었다. 이날 수술에 참여한 의료진 사이에 수술 복장을 한 외국인 세 명이 눈에 띄었다.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 군인대학 간이식센터 아테프 바사스 주임교수, 홍콩 퀸 메리대의 켈빈 엔지 교수, 독일의 슐레스비히홀슈타인대의 디에트 브뢰링 교수였다.

“담도를 연결할 때 스텐트(담관을 넓히는 관)는 왜 삽입하나요.”(바사스)

“담도가 협착돼 문합(연결)한 부위에서 담즙이 새는 걸 효과적으로 예방할 수 있기 때문이죠.”(이 교수)

“몇 번 실을 사용하나요.”(엔지)

“간 문맥(정맥의 일종)은 6번, 간 정맥은 5번을 사용하는 게 좋습니다.”(이 교수)

8시간 정도 수술이 진행되는 동안 세 교수는 3시간 정도 수술방에서 질문을 계속했다. 이 교수는 세 교수의 질문에 일일이 설명했다. 이 교수는 2005년 이후 간이식 건수 세계 1위를 자랑하는, 이 분야의 세계적인 대가이다. 외국인 교수들은 이 교수의 명성을 듣고 3박4일 일정으로 연수를 왔다. 지난해 한 달 이상 머물며 이 교수한테 수술과 처치, 환자 관리 등을 배워 간 외국 의사는 25명이다. 며칠 동안 단기 연수를 받고 간 의사도 200명이 넘는다. 장기 연수를 원하는 의사가 많지만 더 많은 사람에게 기회를 주기 위해 체류 기간을 석 달 이내로 제한한다.

의학계에 한류 바람이 불고 있다. 한국 의료를 배우기 위해 한 해에 수백 명의 외국 의사가 몰려든다. 중국·베트남·몽골·캄보디아·인도·네팔·우즈베키스탄 등 아시아 개도국들에서 가장 많이 찾는다. 콜롬비아·브라질·이집트 등지에서도 온다. 일본·미국·독일 등 선진국 의사들도 늘고 있다.

대부분의 병원은 숙소를 무료로 제공하고 월 30만~120만원을 지급한다. 어떤 병원은 항공료를 제공한다.

개도국 의사들은 1개월 이상 머무르며 심장병·방사선치료·안과·해부학 등 의료의 전반적인 분야를 배운다. 선진국 의사들은 간이식이나 위암 수술, 로봇 수술 등 첨단 의료 분야를 배운다.

독일·홍콩 의사 “간 이식 한 수 배우자”
몽골 의사 “인종도 같아 더 유용하죠”

서울대병원 김연수(신장내과) 교수의 지도를 받고 있는 몽골 의사 오동구아 상기도르치(35·여)는 “2000년 몽골 국립의대를 졸업한 뒤 환자를 진료하다 선진 의료를 한국에서 배우기로 결심했다. 한국 의료 수준이 선진국에 뒤지지 않는 데다 인종이 같아 몽골 환자에게 더 유용하게 적용할 수 있을 것 같아 한국에 왔다”고 말했다.

서울아산병원 이승규 교수(오른쪽 첫째)가 간 이식 수술 연수를 받으러 온 독일의 브뢰링 교수(오른쪽에서 둘째) 등 외국 의사 세 명에게 수술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강정현 기자]


훼이웬융(28)은 중국 장쑤(江蘇)성 양저우대 정형외과 전공의다. 그는 건국대병원 박진영(정형외과) 교수에게 연수를 받고 있다. 박 교수는 어깨 관절경 수술 전문가다. 훼이는 박 교수와 함께 하루를 시작한다. 17일 오전 7시20분 방사선 회의를 시작으로 회진, 외래진료, 외국저널 스터디가 이어졌다. 박 교수가 훼이에게 영어로 일일이 설명한다. 개인 교습이다. 훼이는 “관절경으로 어깨 질환을 수술하는 건 박 교수에게서 처음 보고 배웠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6개월마다 외국 의사 한 명을 교육하는데, 향후 2년 동안 연수 올 사람이 이미 확정돼 있다.

외국 의사들이 한국을 찾는 이유는 최근 몇 년 사이에 우리 의술이 크게 발전했기 때문이다. 한국 의학 분야 연구자들이 쓴 과학논문색인(SCI) 논문이 2000년 2186건에서 2007년 6753건으로 늘었다. 대한의학회(2004년)에 따르면 한국 의료기술은 선진국 최고 기술의 80%에 달한다. 이는 최고 기술을 보유한 나라에 근접하거나 대등한 기술을 갖고 있다는 뜻이다.

세브란스병원이 국내 최초로 도입한 로봇(다빈치) 수술과 같은 첨단 의술에는 선진국 의사들이 많이 찾는다. 로봇 수술센터 소장인 정웅윤(외과) 교수는 “로봇수술은 국내 병원이 세계적인 수준이며 우리 병원에서만 최근 3년 반 동안 2400명가량을 시술했다”며 “중국·태국·말레이시아 등 아시아는 물론 미국 ·일본 등 선진국 의사들도 연수를 온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200여 명의 외국 의사가 다녀갔다.

특정 질환 전문병원에도 외국 의사가 몰린다. 경기도 부천의 심장 전문병원인 세종병원에는 최근 10년 동안 중국에서 80여 명이 연수를 받았다. 척추 치료 전문병원인 우리들병원과 관절 전문병원인 힘찬병원은 외국 의사 연수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우리들병원에는 2004년 이후 270명이 다녀갔다. 이 병원에서 연수를 받고 있는 브라질의 정형외과 전문의 막스 프랑코 드 카발류는 “학회와 논문에서 우리들병원의 수술법을 듣고 한국에서 세계적인 의술을 배울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고 말했다.

연수를 다녀간 외국 의사는 한국 의료의 홍보맨이 된다. 서울대병원에서 연수 중인 몽골 의사 오동구아 덕분에 이 병원을 찾는 몽골의 부유층 환자가 늘었다. 특히 몽골 최고위층 인사가 수술을 받았고 서울대 의료진이 울란바토르로 왕진을 했다.

연세대 의대 손명세(예방의학) 교수는 “일본처럼 국립의료원 안에 국립국제의료원(가칭)을 만들어 아시아 의사들을 체계적으로 교육하는 방안을 고려해 봄직하다”고 말했다.

황세희 의학전문기자·김은하 기자 , 사진=강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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