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박물관 1호 보물 (16) 한국자수박물관 ‘사계분경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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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계분경도 4첩병풍’ 보물 제563호, 고려 14세기, 한폭 가로 40.5㎝세로 66㎝.

분재(盆栽)는 ‘축소지향의 일본’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문화입니다. ‘분재’ 하면 일본이 떠오르곤 하니, 일본의 분재 역사가 우리보다 앞선다 해도 고개를 주억거리는 분들이 많을 겁니다. 이런 일본의 분재 종주국 주장이 쏙 들어가도록 한 문화재가 바로 ‘사계분경도(四季盆景圖) 4첩 병풍’입니다. 14세기 작품인 이 병풍에 수놓인 것은 매화(봄)·연꽃(여름)·포도(가을)·소나무(겨울) 등 화분에 핀 사계절 꽃나무와 기물입니다. 분재 아래에 바퀴를 달아 이동하기 쉽도록 한 발상이 돋보입니다. 화분 둘레에는 꽃·구름·물결 등의 무늬가 있고, 석반의 둘레엔 채석조각을 장식했습니다. 우리 선조들의 분재 수준이 당시 이미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음을 보여주는 겁니다. 이 병풍은 현존하는 자수품 중 연대가 가장 오래된 작품이자 유일한 4첩 병풍이기도 합니다. 병풍은 통상 2첩 가리개 혹은 8첩이나 10첩으로 만듭니다. 무늬비단을 바탕천으로 사용하고, 원 안에만 문양을 둔 점도 보기 드문 구조입니다. 물감을 쓰지 않고 색실만 사용하는 한국 전통자수의 독창성을 보여주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한국자수박물관 허동화 관장은 1980년대 초, 고미술상에서 터키대사 부인에게 넘기기로 되어있던 이 작품을 계약을 파기하도록 설득해 입수했다고 합니다. 그 덕에 한국 땅에 남아 보물로 지정될 수 있었습니다.

이경희 기자

◆한국자수박물관(www.bojagii.com)=보자기·자수·다듬이돌 등 규방문화 관련 유물 3000여 점을 소장하고 있다. 10월 12일부터 ‘베갯모 자수’ 특별전을 연다. 허동화 관장 인터뷰는 21일자 중앙SUNDAY에 실린다. 서울 논현동 학동역 부근. 무료. 02-515-5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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