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면에서 움직이는 문자, 감정 표현 달라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문자의 움직임을 화면에서 어떻게 구현하느냐에 따라 감정 표현이 달라지죠.” 미국 카네기멜론대 디자인스쿨학장 댄 보야스키 교수(사진)는 지난 12일 논현동 SADI(삼성디자인학교)에서 열린 키네틱 타이포그래피 전시회에 참석해 이같이 말했다. 그는 지난 5월19일부터 12일까지 SADI 학생들에게 키네틱 타이포그래피를 강의하기 위해 한국을 찾았다.

이날은 그의 제자들이 한 달간 갈고 닦은 실력을 보여주는 날이었다. 키네틱 타이포그래피는 화면이라는 공간에서 문자의 크기, 박자, 리듬, 속도 등을 조율해 배경음악을 덧씌움으로 해서 문자만으로 영상에 준하는 정보를 담아내는 영상디자인 기술이다.

쉬운 예를 몇 가직 들자면 화면에 등장하는 문자나 문장의 끝이 올라가면 묻는 어조가 된다. 문자의 폭 또는 길이가 길어지면 슬픔이나 여유로움, 갈등 등을 표현하는 것이다. ‘도와주세요’라는 문구가 위ㆍ아래, 좌우로 떨리면 그만큼 절박함이 더하다는 것이다. 작은 크기의 문자가 들쭉날쭉 빠르게 지나가면 ‘속닥속닥’거리는 느낌을 전달할 수 있다. 문자 자체에 성격이 드러나게 된다.

그는 키네틱 타이포그래피를 연극에 비유했다. 그는 “이 둘은 유사성이 많다”며 “문자를 배우에, 화면을 무대에 비유한다. 문자의 움직임이 있고, 소리와 음악이 있고, 시간에 따른 네러티브가 있기 때문에 키네틱 타이포그래피 디자이너는 종종 연극을 디자인하는 관점에서 작업을 진행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키네킥 타이포그래피는 어떤 장점이 있을까. “문자의 움직임에 생명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화면 안에서 문자만으로도 모든 것을 표현할 수 있거든요. 특히 짧고 강한 인상을 주는데 키네틱 타이포그래피만한 것이 없습니다. 어디에 초점을 두고 사용자에게 전달할 것이 무엇인지 먼저 염두해 둬야겠죠. 물론 매우 긴 책은 다룰 순 없습니다. 한꺼번에 많은 글자를 보여주기 힘드니까요.”

그는 키네틱 타이포그래피가 사용자에게 감동을 주려면 “자유자재로 감정을 극대화하거나 최소화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한정된 화면 안에서 키포인트를 잡아 의미를 압축해 사용자와 ‘소통’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키네틱 타이포그래피를 100% 이해하려면 언어 능력이 필수여야 한다. 급박한 상황이나 갈등에 의한 고뇌를 보여주고 싶어도 문자의 뜻을 모르면 감정 전달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에게 ‘한국에서 본 인상깊은 키네틱 타이포그래피’를 물었지만 “사실 언어를 몰라 어떤 느낌으로 다가오는지 이해를 하기 어렵다”고 솔직히 고백했다. 그는 “기회가 된다면 (한국인들이) 어떤 정보를 어떻게 전달하는지 알아보겠다”고 말했다.

세계 각 국의 학생에게 키네킥 타이포그래피를 가르치는 그에게 한국 학생의 작품을 본 소감을 물었다. “처음 이 분야를 접하는 학생들인데도 소프트웨어가 잘 다져져 있어요. 또 음악을 고르는데 있어 굉장히 용감해 다양한 시도를 엿볼 수 있었어요.” 최근 중국 칭와대 학생들을 상대로 강의를 한 그는 한국과 중국 학생들의 차이점도 소개했다.

“많은 중국 학생들이 한자로 키네틱 타이포그래피를 만들었어요. 이곳 학생들은 대부분 영어로 제작했고요. 한글로 만들면 어떻게 표현되는지 보고싶었는데 그 부분이 좀 아쉬워요. 앞으로 한글로 된 작품을 전 세계에서 많이 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이지은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