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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데타' 주장은 용서해도 되는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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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송두율 교수 사건 이래 긴 침묵을 깨고 지난 15일 전국 대학의 철학과 현직 및 비정규직 교수 257명이 송 교수의 무죄 석방과 국가보안법 전면 폐지를 요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하고 탄원서를 제출했다. 철학과 교수들의 이런 행동에는 수준 이하의 논증으로 점철된 1심 판결문이 큰 영향을 미쳤다.

우선 1심 판결문은 송 교수가 후보위원이라는 '증언'과 그가 노동당에 가입했었다는 '정황'이 있는 반면 송 교수가 후보위원이 아니라는 '증거'는 없다는 요지로 송 교수를 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으로 결론내렸다. 이제 누가 나서서 나를 노동당 정치국원이라고 고변하더라도 그게 '아니라는' 증거를 대지 못하고, 내 행적에서 수상한 정황 몇 가지만 있으면 꼼짝 없이 정치국원이 될 것이다. 철학에서 이런 식의 추론은 '무지에 호소하는 오류'다.

송 교수의 저작 활동에 대한 평가는 더욱 불합리하다. 그의 서적 대부분이 노동당 간부의 지도적 업무로 규정됐다. 그런데 그 활동이 '대한민국에 미친 영향력'이라는 것이 기막히다. 판결문에 따르면 "이를 읽는 국내 독자들로 하여금 북한에 대한 올바른 판단을 어렵게 하고 왜곡된 시각을 갖게 하는 등 대한민국 사회에 미친 영향이 상당히 크다"는 것이다. 즉 책을 읽는 독자들의 판단을 흐리게 했다는 게 '상당히 큰' 영향력인 것이다.

그런데 이런 판결이 과연 현행 국가보안법의 취지에도 맞는가? 이 사건의 1심 판결에서 전혀 적용되지 않은 국보법의 핵심 조항으로 제1조가 있는데, 그 1항에 이 법은 '국가의 안전을 위태롭게 하는' 반국가 활동을 규제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2항은 바로 이런 목적의 달성에 필요한 '최소한도'의 경우에만 이 법에 저촉되는 행위로 해석해야 한다는 주의사항을 달아놓았다.

자, 그럼 분명히 판단하자. 송 교수의 저작들이 국가 안전을 위태롭게 했는가? 노동당 후보위원의 지도적 업무 결과가 겨우 독자들의 판단력을 흐리게 했다는 것인데, 그것이 국가 안전을 위태롭게 했는가? 아하! 우리 판사님들, 이건 개그다.

지난 3월 이화여대 김용서 교수가 200여명의 퇴역 장성들 앞에서 "정당한 절차를 밟아 성립된 좌익정권을 타도하고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복원하는 방법에는 군부 쿠데타 이외의 다른 방법이 없다는 게 이해될 것"이라고 주장했던 일을 기억할 것이다.

당시 탄핵으로 정국이 요동치던 정황을 고려하면 이런 발언은 송 교수의 저작 활동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당장의 위험성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런데 군사 반란 및 내란 선동죄로 고발된 이 사건을 조사한 경찰 보안수사대는 자유민주주의의 정당한 절차를 명백히 부정한 김 교수의 이런 발언이 '학술 강연 목적'으로 행해졌으며 내란 선동을 의도하지는 않았다는 송치 의견서를 검찰에 보냈다고 한다.

설사 이 과정에서 김 교수가 치유 불능의 반민주적 파시스트로 확증된다 하더라도 나는 김 교수를 '처벌'하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고 본다. 그가 폭력을 의도해 선동했다고 하더라도, 바로 그 때문에 '명백하게 현존하는' 폭력적 위험이 발생하지 않는 한 그것은 김용서 개인의 사상과 표현의 자유다. 위험한 사상을 가진 자는 국가기관에서 '주목'할지언정 법적으로 '처벌'할 일은 아니다. 그것은 바로 '헌법상 보장된 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부당하게 제한함으로써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가장 바람직한 활력이 작동하지 않을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쿠데타 동조 전력자들이 상당수 포함된 청중 앞에서 현 정권 전복의 길이 있다고 '분석'했을 뿐이라고 강변하는 학자도 풀어준다면 상당기간 관찰한 북한 정권의 내부를 불특정 독자에게 '공개'해 온 다른 학자를 풀어주지 못할 이유는 무엇인가? 바로 법 때문에 그렇게 못한다면 그 법을 없애야 한다. 그것은 김용서와 송두율을 다 같이 끌어안아야 하는 우리 자유민주주의의 족쇄다. 그래서 외친다. 판사를 바보로 만드는 국가보안법 철폐하라!

홍윤기 동국대 교수.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