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한 금융시장 속사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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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금융개혁.부실기업 정리와 같은 커다란 현안들이 산적해 있고 갈 길은 먼데 엔화급락의 충격이 국내 경제회생의 발목을 잡고 있다. 엔화가치가 많이 떨어지면 조선.철강.반도체.자동차 등 일본과 국제시장에서 치열하게 맞붙고 있는 품목들의 수출이 큰 타격을 받을 것은 필지의 사실. 조세연구원은 엔값이 1% 떨어질 경우 우리나라 수출액이 0.21% 줄어드는 막대한 지장이 생긴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이러한 실물부문 충격에 앞서 금융부문은 직격탄을 맞게 된다. 엔화가치 급락은 일본경제의 우산권 아래 있는 동아시아 전체의 부실화로 해석되면서 이 지역 각국의 환율을 함께 끌어내린 것이 과거의 경험이다.

현재 원화환율 상승세는 예상만큼 빠르게 나타나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외환딜러들은 최근 국내 노동계의 불안한 움직임, 인도네시아 사태의 후유증 등과 함께 엔.달러 환율이 더욱 높아지면 원화 환율이 다음달중 1천5백원대에 육박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환율이 이처럼 들먹거리면 그동안 추진해온 금리인하는 다시금 요원한 일이 되고 만다.

이번 엔화환율 급등의 직격탄을 맞은 곳은 다름 아닌 주식시장이다. 수출경쟁력 약화에 대한 불안심리도 문제지만 국내에 들어온 외국인 투자자들이 환율변동 리스크를 우려해 손을 털고 있기 때문이다.

증시침체로 말미암아 자본시장을 통한 외자유치가 어려워지는 것은 물론이고 작금 금융권 구조조정의 최대 관건인 증자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게 된다는 점에서 11년래 최저수준으로 추락한 종합주가지수는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삼성금융연구소 김진영 선임연구원은 "엔저 현상에 따라 국제결제은행 (BIS) 자기자본비율이 8%를 밑돌게 될 일본 은행들이 약 1백20억달러로 추산되는 국내기업들의 단기외채를 롤오버 (만기연장) 해 주지 않는 상황이 닥친다면 제2의 외환위기가 오지 말란 법도 없다" 고 우려했다.

굳이 엔저의 충격이 아니더라도 정부가 즐비한 고금리 은행상품의 원리금을 보장하고 있는 터에 위험성 많은 주식투자에 나설 사람들이 과연 얼마나 될 것이냐는 분석도 있다. 이주열 한국은행 국제경제실장은 "엔화약세가 지속될 경우 원화가치도 동반하락 현상을 보여 외국인 자금이 국외로 빠져나가고 이것이 다시 원화가치를 추가하락시키는 악순환을 초래할 수도 있다" 고 우려한다.

어쨌든 국내의 구조조정 본격화 과정에서 빚어지고 있는 불안요인이 증폭되고 있는 가운데 해외요인까지 겹치면서 국내 금융시장이 다시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구조조정 과정에서의 불안요인을 꺼려 한국을 외면하고 있는 외국인 투자자들 입장에서는 엔화 폭락 현상이 대한 (對韓) 투자에 또다른 악재로 다가섰기 때문이다.

홍승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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