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버지니아주 "허리에 권총 차고 돌아다녀도 합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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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버지니아주에서 시민들이 허리에 권총을 찬 채 거리를 활보하고 있다. [워싱턴 포스트 제공]

"콜트 45구경 권총을 허리에 찬 사나이 여섯명이 들어와 손님들이 불안해한다. 빨리 와 쫓아 달라." 지난 2일 수도 워싱턴 바로 아래에 있는 버지니아주의 레스턴시 한 음식점, 주인이 다급한 목소리로 경찰에 전화했다.

출동한 경관들은 이들을 체포하려고 했지만 "우린 합법적 권리를 행사하고 있는 것"이라는 사나이들의 설명을 듣고 발길을 돌려야 했다. 경찰은 이에 앞서 인근 타이슨 코너시의 스타벅스 커피점에 권총을 차고 들어온 대학생 두명을 경범죄로 구금했으나 하루 만에 '실수'를 사과하고 석방했다.

◇총기를 드러내야 합법=전미총기협회(NRA)본부가 있는 버지니아주는 총기를 옷 속에 숨기는 등 비밀리에 휴대하려면 지방법원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그러나 총기를 공개 휴대하는 경우는 아무런 사전허가 절차가 필요 없다.

1607년 버지니아주에 첫 영국 식민지가 건설될 당시부터의 전통이다. 게다가 이 주는 지난 1일 '주 내의 어떤 자치단체도 총기 구입.보관.휴대에 아무런 제한을 가할 수 없다'는 더욱 강력한 총기 휴대 보장법을 발효시켰다. 군경의 무기고가 있는 알렉산드리아시 등 버지니아 내 일부 자치단체는 안전문제를 이유로 총기의 공개 휴대를 제한해 왔다. 하지만 새 법으로 이런 규제마저 없어지게 됐다.

그러나 공개 휴대가 이전부터 합법이란 사실은 주민들은 물론 경찰에조차 잘 알려지지 않았다. 이에 따라 버지니아주의 총기 규제 반대론자들은 새 법 발효를 앞둔 지난달부터 음식점.상가 등 공공장소에서 총기를 휴대하고 다녔다. 사람들의 이목을 끌어 공개 휴대가 합법임을 홍보하려는 '시위성'행동이다. 놀란 주민들의 신고로 경찰이 출동했다가 도리어 이들에게 '교육'받고 돌아간 사례가 네 건에 이른다.

"총기를 공개 휴대하는 사람들은 법을 잘 지키는 시민들이며, 공개 휴대함으로써 더 조심하게 된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케네스 W 스톨(공화) 버지니아주의회 상원의원은 "총을 차고 다니면 주변에 불안감을 안겨줄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헌법상 보장된'무기 휴대의 권리'가 부인돼야 할 정도는 아니다"며 이들을 옹호했다.

◇'서부시대 역행'반론도=그러나 반대론도 거세다. 총기를 공공연히 갖고 다니면 사소한 말다툼이 총질로 이어질 수 있고 어린이가 총기를 만지다 사고를 낼 가능성도 크다는 것이다. 반대론자들은 "지금이 카우보이가 총을 차고 돌아다니던 서부시대인가"라며 "특히 알코올과 총은'코드'가 맞지 않는다. 최소한 술집에선 공개 휴대를 금지하도록 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제닛 하웰(민주) 버지니아주의회 상원의원은 "다음 회기에 이 같은 골자의 법안을 발의할 것"이라고 밝혀 총기 휴대 논쟁은 정치쟁점으로 비화할 전망이다.

워싱턴 포스트는 "버지니아주 외에도 미국 내 21개 주에서 총기 공개 휴대가 허용되고 있다"고 집계하고 "여기에는 총기 판매를 늘리려는 무기업체들과 총기협회의 로비가 작용한 측면도 있다"고 분석했다.

워싱턴=강찬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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