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년 無파업 도요타를 가다] 下. 임금인상 기준은 '생산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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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요타는 매년 10월 5만여명의 계열사 종업원이 참가해 노사 화합을 다지는 '도요타 데이' 행사를 나고야에서 한다. 지난해 열린 도요타 데이에서 도요다 쇼이치로 명예회장(좌석 앞줄 왼쪽에서 둘째)이 새로운 이동수단 발명 대회인 '아이디어 올림픽'에서 심사를 하고 있다. [김태진 기자]

"도요타 임금 협상의 기준은 이익의 많고 적음보다 생산성 향상입니다. 노조도 성과급을 챙기기보다 고용 안정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지난 14일 도요타의 본거지 나고야(名古屋)에서 만난 도요타 모토마치 공장 노조원인 스즈키(鈴木.46)의 말이다. 입사 25년이 넘었다는 그는 하루 8시간 작업 이외에 한시간 정도 잔업을 한다. 그리고 주 3일 정도는 업무를 끝내고 생산성을 올리기 위한 분임조(QC서클)에 참가한다. 물론 임금을 받지 않는 자발적인 활동이다.

그가 받는 연봉은 보너스.잔업 수당 등을 합쳐 900만엔(9900만원) 정도다. 올해 임금 협상에선 생산성 향상이 기대치에 못 미쳐 지난해 받았던 7만엔(77만원)의 성과급도 받지 못했다. 보너스도 소폭(약 6%) 줄었다. 임금 협상에 불만이 없느냐는 질문에 그는 "업무 강도가 높아 집에 돌아가 잠을 자기도 바쁜데 무슨 노조 활동을 하겠느냐"며 "노조원들도 임금 협상에 관심이 거의 없다"고 말한다. 또 "노조는 회사 경영이 잘 될 수 있도록 돕고 조언하는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고 덧붙인다. 도요타 노조원은 대리급 이하다. 전체 직원의 80%가 노조에 가입해 있다.

올해 도요타 근로자(임원 제외)의 평균 임금은 900만엔 정도. 이 가운데 20%가량은 잔업 수당이다. 2000년 이후 세계 자동차 업체 중 가장 많은 이익을 내고 있는 도요타는 4년째 기본급을 동결했다.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세계경제 환경 변화에 따른 위기 가능성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종업원 1인당 매출액은 도요타가 6억8081만원으로 자동차 업체 가운데 세계 1위다.

나고야대 조두섭(경영학)교수는 "도요타 임금 협상의 가장 큰 기준은 생산성 향상"이라며 "한국처럼 이익이 많이 났다고 임금을 올려달라는 '내 몫 챙기기'식 협상은 생각할 수도 없다"고 지적한다.

경영층도 이런 위기감에 고통 분담으로 화답한다.

아이치노동문제연구소 사루타(猿田)소장은 "경영층이 종신 고용을 가장 중요한 경영 목표로 생각하는 데다 1990년대 중반 이후 고통 분담 차원에서 임원 평균 임금을 근로자 평균 임금의 세배 이내로 줄였고, 이 점이 노사 신뢰에 큰 몫을 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도요타는 올 4월 대졸 및 현장 근로자를 합쳐 불과 1800명을 뽑았다. 종신 고용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대신 기간제(계약직)나 파견직 사원 비율이 올라가 전체 작업자의 20%에 달한다.

나고야 주쿄(中京)대 경영학부 전우석 교수는 "도요타는 62년 노사화합 선언을 하면서 노조가 가장 큰 권리이자 무기인 파업권을 회사에 반납했다"며 "올해 보너스가 줄었는데도 근로자들의 불만이 없는 것은 이런 노사 신뢰 분위기에 경영층의 고통 분담이 더해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도요타의 종신 고용은 37년 창업 때부터다. 창업자인 도요다 기이치로(豊田喜一郞) 당시 사장이 "종업원을 해고하지 않는 것이 경영자의 도리"라고 입버릇처럼 말한 것이 경영 이념으로 자리잡았다.

나고야=김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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