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녘산하 북녘풍수]15.성불사 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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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성불사가 자생풍수에 따라 입지와 좌향을 택한 전형적인 사례임은 이미 언급했다. 성불사의 자생풍수적 조건 중에서 하나 더 추가해야 할 것이 있다. 응진전이 바로 그것이다.

부속건물이면서도 본전인 극락전보다 몸채가 더 큰 응진전은 뒤에 수려한 산을 배경으로 삼고 살기 띤 약물산을 피해 서향 (西向) 을 하고 있다. 앞으로는 모자산과 노적봉이 둥드럼한 봉우리를 드러내니 이는 유정한 산세다. 바로 이론풍수에 딱 들어맞는 좋은 터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좋은 터라면 두말할 것도 없이 본전인 극락전을 거기에 들였어야 하지 않은가.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성불사가 자생풍수에 따라 지어진 절이기 때문이다. 여러차례 되풀이 하는 말이지만 자생풍수는 병든 어머니부터 고쳐야 한다. 그래서 대웅전격인 극락전을 병든 터에 자리잡게 하고 실제로 땅 기운이 좋은 소위 명당 길지와 좋은 좌향으로는 응진전을 앉힌 것이다.

극락전 뒤에는 자그마한 집 한 채가 있다. 산신각이다. 안을 들여다 보니 신선이 동자와 호랑이를 거느리고 앉아 있는 그림이 걸려 있다. 당연한 일이다. 호랑이는 산신이니까 의당 산신각에 있어야 할 일이 아니겠는가. 홍명희의 소설 '임꺽정' 에 등장하는 호랑이 얘기는 모두 이곳을 무대로 한 것이라 한다. 뒷봉에서 호랑이 새끼 두마리를 잡은 곳이 지금도 남아 있고 임꺽정의 수하로 봉산 태생인 배돌석이 호랑이를 때려잡은 곳도 이곳이라 한다. 물론 임꺽정 얘기는 나중에 구월산으로 옮겨 가는 것이지만.

1953년 성불사의 마지막 주지 스님이 99세로 열반에 들었다고 한다. 속세로 보자면 굉장한 장수 (長壽) 다. 부근 주민들도 대개 오래 수를 누리는 편이며, 특히 여인들이 예쁘다는 말을 들었다. 아름답게 생긴 '녀성 안내원 리선생' 은 "물 맑고 공기 좋아 인물이 곱고 장수한다" 고 자랑이다. 앞서 평북 창성과 함께 이곳 공기가 좋다는 얘기를 한 바 있거니와 약물산에서 나오는 약물이 또 사람을 그렇게 만든다는 것이다.

약물은 굴 속에서 나오는데 저녁나절 해질 무렵에만 잠깐 볕이 든다고 한다. 이때 해가 든 풍광이 금색이라 금수정이라 부른다는 것이다. 안내원은 이 샘이 "한편으로 '인민' 들에게 쥐구멍에도 볕들 날 있다는 염원을 심어주는 상징성을 지니고 있기도 하다" 는 설명을 곁들인다.

성불사가 자리잡고 있는 정방산 안에는 무덤을 쓰지 못한다고 한다. 워낙 양명한 산이라 시신의 음기를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일 터인데, 누군가 욕심을 품고 밀장 (密葬) 을 하면 반드시 가뭄이나 홍수가 져 사람들이 알게 된다는 것이다. 그럴 경우엔 황주와 봉산 사람들이 모두 모여 반드시 그 밀장 터를 찾아내고 시신을 훼손하는 풍속이 있었다고 한다. 우리나라 어디서나 들을 수 있는 밀장 방비 설화의 정형이다.

점심은 정방산 찻집에서 금수정 약샘물에 '곽밥' 으로 때우고 오랜만의 여유시간을 갖는다. 마침 황창배 화백이 그림을 그리고 있어 내게도 시간이 난 것이다.

성불사 아래 야외휴식터. 돌 책상과 돌 의자에 앉아 그간의 기록을 정리하고 있는 이 마음이 그렇게 편할 수 없다. 따사로운 햇볕 아래 산새소리 명랑하고 다들 어디로 갔는지 인적도 끊겼다. 홀로 신선의 마음이 돼 앉아 있자니 다른 일행에게는 얼마쯤 미안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내가 처음 초봄같다고 했던가. 이제는 또 초추 (初秋) 의 양광 (陽光) 이란 표현이 떠오른다. 어찌 하늘은 푸르고 햇빛은 이다지도 맑은가. 문득 내 자신 속세를 떠나 구도 길에 오른 도인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 유명한 '성불사의 밤' 이란 노래가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지금은 깊은 밤도 아니고 처마끝에 매달려 '그윽한 소리' 를 들려주던 풍경도 없다. 마지막 주승 (主僧) 이 세상을 떠난 것도 5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뒤다. 그래도 객 (客) 은 여기 잠깐이나마 홀로 앉아 정방산과 성불사, 그 자연과 인공이 뿜어내는 거대한 침묵의 소리를 듣고 있으니 그나마 다행인 셈인가. 사실 풍수는 터와 그 주변 산하가 내는 소리를 듣는 우리 민족 고유의 지혜다. 그 터에 의지해 살아갔던, 이제는 사라져 간 사람들의 무언의 소리에도 귀를 기울인다. 그것이 들려야 풍수를 했다 할 수 있고 자연의 진정한 모습도 보게 되는 것이다. 아, 정방산이여, 성불사여. 나는 지금 너의 소리를 제대로 듣고 있는가.

내 어느 날 부모님 모시고 식솔들 챙겨 이 산에 다시 올 수 있으려나. 어머님은 몰라도 아내와 자식들은 반드시 그럴 날이 있으리라 믿는다. 그래야 내 마음의 미안함도 가실 것이 아닌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성불사의 새소리와 물맛, 시원한 공기를 마셔보고 싶겠는가. 그들은 알고 있으리라. 이 산하의 명미한 풍광을. 다만 오지 못함을 통탄할 뿐. 마음들은 다 이곳을 찾아 산 속의 부드러운 흙을 밟고 있으리라.

오후도 느지막한 시간이 됐다. 떠나자는 소리가 들린다. 3시50분 성불사를 출발한다. 대동강 평천나루에 꽤 큰 배가 세 척 떠 있고 많은 사람들이 짐을 들고 기다린다. 아마도 서해갑문 (閘門) 쪽으로 가는 연락선을 기다리는 사람들인가 보다. 남포와 평양 사이에는 서해갑문으로 생긴 호수를 이용해 정기선과 화물선이 다닌다고 한다.

전날 보니 서해갑문에서 가까운 대진나루와 와우도에는 제법 많은 배들이 정박 중이었다. 이 배들은 쑥섬 건너 평천나루까지 들어간다고 하니 수운 (水運) 은 편리한 편이다. 1천t 이상의 큰 배들도 자유로이 다닐 수 있다고 했다. 한강 하구가 개방된다면 서울도 그럴 수 있을텐데 하는 생각을 해본다.

한시간이 채 못돼 평양에 도착한다. 갈 때보다 빨리 왔다. 호텔 방에 들어와서도 성불사가 안겨준 여운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대동강 냉장고' 를 열어보니 신덕샘물.룡성맥주.룡성배사이다.코카콜라.양주샘플.중국제 과일캔 등이 들어 있다. '진달래 텔레비전' 에서는 여자들의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다. 소리는 꾀꼬리같이 아름다우나 왠지 애상 (哀傷) 이 깔려있다. 본래 아름다움은 애상을 띠는 법인지도 모른다. 종종 너무 아름다워 슬픔을 자아내는 경우가 있지 않던가.

글 = 최창조·그림 = 황창배

사진 = 김형수 (통일문화연구소 차장)

※다음회는 '평양의 주산 금수산' 편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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