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수하르토 하야…하비비 새대통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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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카르타 = 진세근 특파원.이영렬 기자]인도네시아를 32년동안 철권통치하면서 경제성장을 주도한 수하르토 대통령이 21일 마침내 사임하고 대통령직을 바하루딘 유수프 하비비 부통령에게 넘겼다. 이로써 인도네시아는 민주주의 국가로 재탄생하는 궤도에 본격적으로 올라섰다.

그러나 대학생 등 재야세력들은 하비비 신임 대통령의 사임도 요구함으로써 정국불안이 해소되지 않고 있다. 이에따라 족벌 등 수하르토 체제의 잔재를 청산하고 민주주의를 확립하는 개혁과정에서 인도네시아는 상당기간 혼란을 겪을 전망이다.

수하르토는 이날 오전9시 (한국시간 오전11시) 수도 자카르타의 메르데카 대통령궁에서 TV로 생중계되는 기자회견을 갖고 사임성명을 발표했다. 하비비 부통령을 비롯한 고위관리들과 위란토 국방장관 겸 통합군사령관 등 군 최고지휘부가 배석한 가운데 발표한 성명에서 수하르토는 떨리는 목소리로 "인도네시아 공화국 대통령직을 사임하기로 결정했으며 (사임결정은) 성명서를 읽고 있는 1998년 5월21일 이 시각부터 유효하다" 고 밝혔다. 그는 "1945년 헌법 제8조에 따라 바하루딘 유수프 하비비 부통령이 2003년까지의 대통령 잔여임기 동안 대통령직을 수행할 것" 이며 "통치권의 공백을 피하기 위해 부통령이 지금 대법관들 앞에서 대통령 취임선서를 할 것" 이라고 말했다.

수하르토는 국민의 열망에 따라 개혁위원회를 구성하려 했으나 실패함으로써 대통령 임무를 수행하기가 어려워졌다고 사임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재임기간 동안 실수와 부족한 점이 있었다면 용서를 빈다" 고 덧붙였다.

수하르토의 성명발표 직후 하비비 신임대통령의 취임선서가 진행됐다. 뒤이어 위란토 장군이 성명을 발표, 군부는 하비비의 권력승계를 지지하며 수하르토 대통령과 가족의 안전과 영예를 계속 보호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새로운 소요사태 예방에 군대가 적극 나설 것이라면서 모든 세력들이 소요사태 예방을 위해 평정을 유지할 것을 촉구했다. 한편 수하르토의 퇴진을 요구하며 국회의사당에서 3일째 점거농성을 벌여온 대학생들은 수하르토의 하야소식이 전해진 직후 환호성을 질렀다.

그러나 뒤이어 하비비의 대통령 취임소식이 전해지자 한 학생이 마이크를 잡고 "우리의 투쟁은 끝나지 않았다. 우리는 수하르토와 함께 하비비도 물러날 것을 요구한다" 고 외쳤다.

이슬람단체 무하마디야의 지도자 아미엔 라이스는 하비비가 과도적인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자신은 다음 대통령선거에 출마할 것이라고 밝혔다.그는 수개월내 상황이 안정을 되찾으면 수하르토에 대한 공정한 조사가 진행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아흐마드 티르토수디로 인도네시아 이슬람교지식인협회 (ICMI) 집행의장은 조속한 총선실시를 촉구했다. 이날 수하르토의 사임성명은 매들린 올브라이트 미국무장관이 수하르토의 사임을 촉구한지 몇시간 뒤에 나왔다.

한편 인도네시아 소요사태로 불안감을 보이던 아시아 금융시장은 수하르토 사임소식이 전해진 뒤 안정세를 되찾았다.

〈sk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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