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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아이] 굳세어라 외교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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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외교부가 밉다. 도무지 미덥지 않다. 거창한 외교전략 짜는 데 전념하는 것 같지도 않은데 대민업무는 귀찮아 하는 외교부를 좋아할 수 없다. 또 엘리트 의식이 가득하고 책임 떠넘기는 데 이골 난 뺀질이 외교관들을 나라고 옹호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외교부에 대한 몰매질은 그만할 때가 됐다. 만두 파동에서 보지 않았는가. 온 사회의 집단 히스테리에 애매한 중소업체 여럿이 망했다. 만두 만들어 먹고사는 이들 모두 죽이자고 벌인 푸닥거리는 아니었는데 정신없이 패다 보니 유탄 맞은 시체들이 즐비한 꼴이다. 외교부도 마찬가지다. 외교관들의 사기와 조직의 활력이 복원 불가능한 수준으로 떨어져선 곤란하다.

정부 부처 간의 경쟁과 갈등 속에 외교부의 위상은 변하게 마련이다. 특히 청와대의 국가안전보장회의(NSC)와의 미묘한 역학관계는 우리만의 현상도 아니다. 하지만 "한.미 동맹관계를 망쳐놓은 장본인이 대통령"이라고 빈정거리거나 "대통령의 탄핵에 박수쳤던 조직"이 외교부라고 몰아세우는 건 지나치다. 또 "전문성과 애국심이 부족한 집단"이 외교부라는 비난도 적절치 않다. 세상이 어수선하다 보니 이처럼 괴담(怪談)에 가까운 얘기들이 나돌고 있다. 이런 자학적인 푸념에는 출구가 없다.

바깥세상과의 연계와 유대를 통해 우리가 이만큼 컸다. 외치(外治)에 대한 전략적 사고 없이 국가의 생존책략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게 우리 현실이다. 물론 과거처럼 외교관이란 특수업종의 훈련된 이들만이 외교를 담당했던 시절은 흘러갔다. 오히려 좀더 전문성을 갖추고 보다 열린 마음으로 세상을 볼 수 있는 외교 일꾼을 요구하는 시절이 왔다. 그래서 외교부가 대내홍보에 힘써 국민의 마음부터 얻으라는 민간 컨설팅회사의 충고는 너무도 고답적이고 기운 빠지는 얘기다. 물론 이래저래 외교부의 잘못이 크다. 그러나 우리 국민이 언제 외교문제에 그리 큰 관심을 가졌던가. 정치인들은 국내 정쟁에서 헤어나오질 못하고 언론 역시 비생산적인 자해성 기사에 집착하는 마당에 외교부가 비집고 들 여지는 애초부터 넓지가 않다.

스위스 취리히에서 발간되는 NZZ란 일간지는 국제문제 보도에서 세계적 권위를 인정받고 있다. 해외 특파원만 90명이 넘는다. 박사급 기자들도 수두룩하다. 지면의 시작부터 심층해설을 곁들인 국제기사로 채워진다. 2년 전 마르코 데 스토파니 부사장에게 그 배경을 물었다. "대외문제에 대한 국민의 이해와 관심 없이 스위스의 생존이 가능하겠느냐"는 게 답이었다. 우리의 지정학적 처지가 흔히 스위스와 비교되곤 했다. 다만 정부와 관리들에 대한 뿌리깊은 불신이 그네들과 다를 것이다. 또 정부와 조국의 가벼움에 길들여진 국민의 행태가 외국에 나가면 주체못할 무모함으로 표출되곤 하는 게 다를 것이다. 그래서"피해의식이 남아 있는 국민 정서가 냉철한 판단에 어려움을 주고 있다"는 외교부 차관의 말에 나는 공감한다. 또 그런 정서에 무심했던 외교부가 "절체절명의 위기의식을 갖고 민원부서로 거듭나야 한다"는 외교부 장관의 자기 반성도 그럴 듯하다.

그래서 나는 외교부에 바란다. 우선 눈높이를 낮춰라. 하지만 사명감과 자긍심은 마음속 깊이 간직하라. NSC에 휘둘릴 이유도 없고 주눅들 필요도 없다. 일부 가벼운 정치인들과 언론의 뭇매에 기죽을 필요없다. 모두가 공범이니까. 그러나 지난날 그랬듯이 한순간 머리 조아리며 바람 잦아질 날 기다리는 기회주의적 자세는 하루빨리 버려라. 컨설팅 회사의 조언도 외교부 관리들에게 착시(錯視)현상부터 극복할 것을 주문하고 있지 않은가. 그래야 나도 "굳세어라 외교부"를 마음 편히 외칠 수 있으리.

길정우 통일문화연구소장 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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