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永眠한 '팝의 전설' 프랭크 시내트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3면

15일 타계한 프랭크 시내트라는 말 그대로 한 시대를 풍미한 미국 연예계의 대부였다. 그는 가수및 배우로서 뿐 만 아니라 뭇 여성들과의 염문, 마피아와의 관련설, 정치권과의 밀착 등 숱한 화제를 몰고다닌 것으로 우리 기억에 남아있다.

가난한 이탈리아 이민 가정에서 성장한 그는 15세인 30년 주급 15달러를 받는 아마추어 가수로 연예계와 연을 맺었다. 운전사등 아르바이트를 하며 10년간 고된 신인생활을 하다 41년 빅밴드인 해리 제임스 악단에서 노래하면서 당시 10대들의 스타로 떠오른다.

40.50년대 '아일 네버 스마일 어게인' '한밤의 나그네' 등 중후하고 달콤한 그의 노래는 공연장에서 여성들이 졸도사고를 일으키는 첫 기록이 된다. 또한 이 시기에 영화 '지상에서 영원으로' (53년) '황금 팔을 가진 사나이' (55년) '상류사회' (56년) 등으로 스크린에서도 대스타로 부상했다.

그는 68년 폴 앵카가 지어준 자서전적인 노래 '마이 웨이' 로 쉰이 넘은 나이에 제2의 전성기를 구가했다. 마피아와의 연계설이 끊이지 않은 그는 '대부' 에서 마피아 우두머리에게 영화출연을 부탁하는 가수역의 실제모델이었다. 그는 또 여배우들을 대동하고 백안관을 자유롭게 드나드는등 플레이보이로 사교계를 주름잡았다.

첫부인 낸시 발보터와 이혼한 뒤 에바 가드너와 재혼, 66년 미아 패로, 71년 낸시 발보트와 재결합했지만 이내 헤어지고 76년 지금의 부인 바버라와 결혼했다. 낸시와의 사이에 딸 낸시 시내트라도 60년대 톱가수로 군림했다. 그러나 말년엔 불우했다. 네번의 결혼으로 가족이 늘면서, 2백억달러로 추정되는 시내트라의 재산을 둘러싸고 소송이 끊이질 않았다.

93년 78세의 나이로 라이자 미넬리등 톱가수들과 듀엣음반을 내며 노익장을 과시했지만 이듬해 폐렴.심장질환등으로 무대에서 쓰러졌고 96년부터는 인공호흡기로 연명했다. 그는 97년에는 미 하원이 미국민에게 주는 최고의 영예상인 '의회 금메달' 을 받기도했다.

이영기·강찬호 기자

〈loyok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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