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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살릴 불쏘시개 필요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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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요즘 일본은 경제회복의 양상이 뚜렷하고 한국은 침체의 양상이 더해가고 있다고 한다. 시장경제에서 바람직한 선순환 구조는 '기업의 투자 증가→가계의 소득 증대→소비 증가→기업 매출 증가'로 이어지는 것이다. 기업이 투자하면 종업원과 하청업체로 돈이 풀려나가고 그 돈은 가계 소득 증가로 이어진다. 이 증가분이 소비를 통해 다시 기업으로 회수된다. 한국경제의 고도 성장기에는 이런 구조를 통해 연 10%라는 경제성장을 지속적으로 달성해 왔다.

요즘 상황을 보면 개인들이 한푼이라도 아끼고 돈을 쓰려 하지 않기 때문에 소비가 살아나지 않는다. '소비 위축→투자 위축→가계 소득 감소'의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소비자들이 돈을 쓰지 않는 이유는 여러가지다. 실업의 공포 때문에 미래가 염려돼 소비를 줄인다. 지난 몇 년 동안 담보대출로 아파트를 구매해(이 같은 대출이 300조원에 이른다고 한다) 이자 부담이 증가하니 소비가 줄어든다. 또 자녀 교육비에 많은 돈을 쓰니 다른 데 쓸 돈이 줄어든다.

최근 정부가 부동산 거래를 위축시키는 여러 조치를 내놓아 부동산 거래가 이뤄지지 않으면서 부동산에 투자한 개인들이 불안해하고 자금 순환이 안 되는 상황에 빠져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선 부동산을 보유한 개인이 소비를 줄이게 된다.

인위적인 통화 공급은 이런 악순환을 깨뜨리는 주요한 수단이다. 과거 미국에서 극도의 경기 침체기에 뉴딜 정책으로 국가가 사회간접자본 확충 사업을 일으켜 통화를 공급함으로써 경제가 급격히 회복됐다. 우리의 경우 외환위기 시절에 150조원이라는 공적자금을 투입해 부실 채권을 청소하고 나자 급격히 경기가 회복됐다.

이익을 창출해야만 하는 기업이나 실업.소득 감소에 민감한 가계에 비해 정부는 '재정 적자'라는 수단을 구사할 수 있다. 자본주의 경제 시스템을 채택한 수많은 나라(미국.일본 등)가 국내총생산(GDP) 대비 10~20%의 재정적자 규모를 항상 갖고 있는 이유는 여러 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부실한 기업과 가계에서 발생한 금융부실이란 쓰레기를 처리하는 비용이거나 경기부양을 위한 불쏘시개다. 한국의 재정적자는 160조원이라는 데 GDP 대비 20%를 상회하는 수치이긴 하다.

20세기 초에 포드자동차를 설립한 미국의 포드는 당시 개인의 소득수준이 자동차를 보유하기에 낮다는 것을 알고 자기 회사부터 급여를 대폭 올렸다고 한다. 그러자 점진적으로 다른 회사들도 따라서 급여를 올려 자동차를 살 수 있는 수준까지 도달했다고 한다.

기업 입장에서도 소비가 증가하길 기대한다면 근로자의 소득을 늘려주는 것이 한 방법이다. 급여가 올라가면 원가가 상승해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단점도 있지만 개인소득이 늘어나 소비가 증가하는 측면도 있다. 개인들이 미래에 대한 불안을 떨칠 수 있도록 아무래도 정부와 기업이 먼저 불쏘시개를 태워 경기를 살려야 하지 않을까.

한영봉 중앙일보 디지털국회 논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