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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23일 개봉 짐자무시 감독 '데드 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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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죽은 자 (dead man) 와는 함께 여행하지 않는 것이 좋다' 영화 '데드 맨' 은 프랑스 시인 앙리 미쇼 (1899 - 1984) 의 시구를 인용하면서 시작한다. 이후 영화는 타이틀이 올라오기까지 약 10분간 거의 대사를 사용하지 않은 채, 미국 동부의 클리블랜드 출신인 빌리 블레이크 (조니 뎁)가 취직을 위해 열차를 타고 서부의 '머신 타운 (Machine Town)' 으로 향하는 여정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 장면은 통상적인 서부영화의 풍경과는 사뭇 달라 마차가 버려져있고 해골이 뒹굴고 도살된 들소들이 썩어가는 황폐하고 삭막한 모습만이 계속된다.

짐 자무시 감독은 문명과 미개 (야만) 를 분명하게 가르는 전통적인 이분법 대신, '현실' 이란 자연과 인공적인 산물이 뒤엉켜있다는 입장을 취한다. 따라서 그는 우리를 둘러싼 세계를 파악하고 극복하는 길은 물질적이거나 정신적인 것의 어느 한 가지 방식만으로는 가능하지 않으며, 그 둘을 통일적으로 초월하는 방식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곧 타락한 미국 문명에 대한 대안이기도 하다.

취직을 못하고 거리를 배회하던 블레이크는 우연히 꽃파는 여자를 만나 그녀의 방에서 하룻밤을 지내게 된다. 그런데 갑자기 그녀의 옛 애인이 들이닥치고 그의 손에 여인이 죽는다. 당황한 블레이크는 총격전 끝에 그 남자를 죽인다. 이 때만해도 블레이크는 총을 다루는 데 서툰 순진한 청년이었다. 그러나 어마어마한 현상금이 걸린 채 살인자로 쫓기는 과정에서 그는 점점 폭력을 쓰는데 익숙해지고 총 다루는 솜씨도 나아진다.

폭력과 피에 기초하고 있는 미국문명을 혁신하기 위해 자무시감독이 제시하는 것은 '피로 시를 쓰는 것' 이다. 블레이크가 쫓기다 만난 인디언 노바디 (게리 파머)가 그에게 "너는 시인이고 화가다.

그리고 너는 백인들에 대한 킬러여야 한다" 라고 말하는 장면에서 이런 의도는 보다 분명히 전해진다. 자무시는 19세기의 신비주의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 (등장인물들의 이름은 대부분 블레이크의 시집에서 따왔다) 의 사상에 얹어 자신의 주장을 편다.

그가 보기에 블레이크의 사상은 흔히 알고 있듯 무력한 정신주의가 아니다. 그렇다고 폭력을 통해 폭력적인 문명이 스러질 수 있다고 믿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기존의 권위와 제도를 혁파하기 위해서는 기꺼이 무법자가 될 수 있어야 한다는 것, 즉 '새로운 모럴을 창안' 해야 한다는 요구와 닿아있다.

결국 '데드 맨' 이란 인디언을 몰아내고 억압적인 이데올로기로 군림하고 있는 백인 남성들을 가리키며, 그들이 세운 사회제도와는 공존하지 않는 것이 좋다는 게 도입부의 문장에 실린 메시지다. 그렇다면 시가 그래야 하듯, 영화도 전복적이고 삶을 변화시킬 수 있어야 한다는 게 자무시의 전언이 아닐까. 23일 개봉.

이영기 기자

〈leyok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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