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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젊음 ① 무용가 이인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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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무용가이면서 안무가인 이인수씨는 “짜 놓은 안무를 무조건 따라 하라고 하면 오히려 효율성이 떨어진다. 매번 연습할때마다 고쳐야 하기 때문이다. 대화하고 소통하고 이해하면 척 눈빛만 봐도 알기 때문에 효율성도 높아진다”고 전했다. “이 핑계로 단원끼리 툭하면 술마시고 나이트클럽도 간다”며 그는 빙긋 웃었다. [김경빈 기자]

이인수(27)는 촉망받는 무용수이자 안무가다. 대구 출신으로 경북예고와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을 나왔다. 2004년 전국무용제 최우수상을 받았으며 ‘젊은 안무가전’ 등에도 자주 이름을 내밀고 있다. 이 정도면 전형적인 엘리트 코스다. 그렇다면 무용을 시작하게 된 동기는? 대답이 의외였다.

“가수 박남정씨 때문이에요.”

무슨 말인가. 그는 초등학교 2학년때 TV에서 ‘널 그리며’를 부르며 춤추던 박남정을 보고 충격을 받았단다. 유연한 ‘ㄱ’자 손놀림과 날렵한 스텝에 눈을 뺏겼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다섯살 때일거에요. 할머니 앞에서 춤을 추면 ‘잘 춘다’며 박수에 용돈까지 받았는데 그 재미가 쏠쏠했어요. 그러다 우연히 접한 박남정씨의 춤은 그야말로 뒤통수를 맞은 듯 저를 얼얼하게 만들었어요. ‘아 저게 내 길이다’ 싶었죠.”

조숙한 꼬마 아이는 힙합 소년이 됐다. 매일 거울 앞에 서서 자기 나름대로 동작을 따라하고 만들어갔다. 소풍을 가거나, 1박2일 야영 캠프는 소년의 독무대였다.

그건 중학교에 진학해서도 계속됐다. 그의 어머니는 미용실을 하셨다. 어느날 미용실에 노랑머리를 한 청년 세명이 들어왔다. “어머! 너희들 힙합하는가 보네.” “예.” “우리 아들도 힙합하는데….” 그날 그는 청년들을 따라 대구 두류공원으로 갔다. 일종의 오디션이었고, “제법인데”라는 평가와 함께 그는 전문 힙합팀의 일원이 됐다. “전 따로 레슨을 받거나 학원을 다닌 건 없어요. 길거리 댄스가 제 스승이었죠.”

그는 예고 현대무용반에 진학했다. 힙합을 추고 싶었지만 별다른 교육 과정이 없어 차선책으로 선택했다. 현대무용에 대해서는 “난해하고 추상적이며 뜬구름 잡는 춤”이란 인상이 강했다. 그러나 막상 정식 교육 과정을 따라가다 보니 달랐다. “힙합은 멋지게 추면 그만이잖아요. 근데 현대무용에선 스토리를 엮어낼 수 있고, 이미지를 상징화하며, 구성을 할 수 있는 ‘표현력’이란 게 있더라구요.”

그의 춤은 쉽다. 단순하면서도 강렬하다. 자연스러운 흐름과 눈길을 확 끄는 테크닉 또한 빼놓을 수 없다. 그러나 그 뒤에 쓸쓸함이 묻어난다. “제 춤의 마지막은 자주 덩그러니 놓여 있는 무용수의 모습이에요. 저의 내면인거죠. 현대무용을 하면서 제 자신을 돌아보고 알게됐어요.”

그는 대학시절 현재 세계 최고의 안무가중 한 명으로 꼽히는 에미오 그레코 눈에 띄어 1년간 네덜란드 연수를 갖다 오기도 했다. 8월엔 미국 링컨 센터에서 ‘헬프(Help)’라는 작품을 공연할 예정이다.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지만, 뭔가 찡한 게 있어야 한다는 거. 제 춤의 모토에요.” 테크닉 연습보다 무용수와의 끊임없는 대화로 서로를 이해하는 게 춤을 완성시키는 첫번째 방법이라고 믿고 있다는 그. 힙합 소년은 어느새 관객의 눈이 아닌 마음을 잡는 ‘현대 무용 전사’로 조금씩 다져가고 있었다.

최민우 기자 , 사진=김경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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