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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하는 인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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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휴대전화로 통화하며 걷는 사람을 거리에서 만나는 것은 너무도 흔한 일이다. 원숭이와 직립보행을 하는 크로마뇽인에 이어 한 손을 귀에 대고 걷는 현대인의 모습을 자연사박물관에 걸린 ‘인류의 진화’ 그림에 담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이러다 보니 ‘휴대전화 엘보’가 생긴다는 최근의 미국 언론 보도를 단순한 호들갑으로 치부하기 어렵다. 테니스를 즐기다 테니스 엘보에 걸리는 것처럼 휴대전화 통화를 오래 하면 팔꿈치에 통증이 생기고 손가락이 무감각해지는 게 휴대전화 엘보다.

팔꿈치 통증에 전자파 걱정도 있지만 멀리할 수 없는 게 휴대전화다. 인류에 공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능력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랩톱 컴퓨터나 무선 인터넷, DMB 단말기, 자동차 내비게이션까지 가세한 요즘 인간의 능력은 불과 10년 전과 비교해도 엄청나게 커졌다.

휴대용 디지털 기기가 늘어나면서 인간은 늘 보조기억장치를 몸에 지니고 다니는 셈이 됐다. 이들 장치는 사람의 뇌보다 오히려 더 많이, 더 정확하게 기억한다. 최근엔 한 발 더 나아가 뇌에서 나오는 신호를 이용해 로봇이나 기계를 제어할 수 있는 ‘뇌-기계 인터페이스(BMI)’ 기술이 주목받고 있다.

유전공학·로봇공학·정보기술·나노기술의 진보는 인간 능력을 어디까지 끌어올릴지 알 수 없다. 인류는 더 건강하게, 더 오래 살 수 있고 문화적·언어적 장벽도 쉽게 뛰어넘을 수 있게 될 것이다. 자지 않고 먹지 않는 인간이 나타날지도 모른다(조엘 가로·『급진적 진화』).

하지만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울려대는 휴대전화 벨소리에 진정한 휴식, 정신적인 자유를 박탈당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계산기·사전 기능에 머리를 쓸 필요가 없다 보니 우리가 기억하는 전화번호 개수는 갈수록 줄어든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에서 호모 사피엔스로 진화할 때까지는 인류의 두개골 용량이 늘었지만, 최근 3만 년 동안에는 인간의 뇌 크기가 오히려 10~15% 줄었다는 분석도 있다(존 브록만·『과학의 최전선에서 인문학을 만나다』). 도구나 사회 시스템에 더 많이 의존하면서 뇌 자체의 역할은 그만큼 줄어든 때문인지도 모른다.

인간은 지금 이 순간에도 ‘사이보그’를 향해 진화하고 있다. 하지만 첨단 디지털 휴대기기를 소유하지 못한 ‘자연인’이 사회적 약자가 돼 경쟁에서 도태되는 상황이 심각해지지 않을까 걱정되기도 한다.

강찬수 환경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