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력기술, 원전 설계 34년 만에 역수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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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력기술이 5월 그리스 정부와 그리스 연구용 원자로 설계개선 사업 계약을 체결하고 있다.

1978년 완공된 한국 최초의 원자력 발전소인 고리 1호기는 대부분 미국 기술로 건립됐다. 원자로는 미국 웨스팅하우스사가 만들어 공급했고, 설계와 기술·작업 감독은 미국 길버트사(GAI)가 담당했다. 75년 발전소 설계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한국전력기술(KOPEC)이 설립됐지만 주도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30여 년 만에 입장이 바뀌었다. 지난해 웨스팅하우스가 발주한 원전 설계용역을 KOPEC이 낙찰받은 것이다. 그동안 꾸준히 기술개발에 주력한 끝에 98년 설립 목적대로 한국형 원전 개발에 성공한 데 이어 원전 종주국에 우리의 독자 기술을 전수해주게 된 것이다. 올 5월엔 그리스 국립과학연구소가 추진하는 연구용 원자로 설계개선 용역도 따냈다. 친환경 발전소로 원전이 다시 주목받기 시작하면서 KOPEC도 수출 역군으로 변신하고 있다. 올해 원전 설계기술 수출만 250억원에 이를 전망이다.

이처럼 어깨 너머로 기술을 배우던 처지에서 설계기술의 자립을 넘어 역수출까지 가능하게 된 것은 매년 매출액의 10%를 기술개발에 쏟아부을 정도로 투자에 적극적이었기 때문이다. 핵심 인재 확보와 양성에도 정성을 기울여 1900여 명에 이르는 직원 중 박사학위 소지자가 93명에 이른다.

원자력 발전소 설계와 건립이 워낙 복잡하고 어려운 일이다 보니 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종종 부수적인 개가를 올리기도 한다. 대형 공사의 건설계획과 설계부터 시공과 유지·보수까지 건설의 전 과정을 관리해주는 사업(CPM)에 전문지식을 쌓게 된 것이다. 인천공항이나 경부고속철도 등의 대형 국책사업에 KOPEC의 노하우가 보태졌다.

축적된 기술과 고급 인력은 이제 녹색 성장에서도 주축을 담당하게 될 전망이다. 원자력과 화력 발전소의 터빈을 식혀준 공기를 재사용해 증기를 생산하고 이걸로 다시 터빈을 돌리는 에너지절약사업(ESCO)이 대표적이다. 풍력과 태양광 발전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KOPEC 안승규(60) 사장은 “ESCO를 통해 지난해에만 100억원 가까운 연료비를 절감하고 이산화탄소 배출량도 1만5000t가량 줄였다” 고 말했다.

최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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