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파일]안개속의 방송법…표류하는 방송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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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정치권에서 공언했던 상반기중 통합방송법 제정이 불가능해졌다. 여야는 15일 폐회될 이번 임시국회에서 방송법을 상정조차 하지 않았다. 가을 정기국회로 넘어가는 수밖에 없다.

쏟아지는 외국 방송위성의 전파속에서 우리 방송의 '다채널 다매체' 시대를 기대하던 국민들만 실망하는 것이 아니다. 관련업계도 표류하며 커다란 경제적 손실을 낳고 있다.

1천5백억원을 들여 쏘아올린 무궁화 1, 2호 위성은 제 구실을 못하고 하늘에 떠 있는 상태다. 전문가들은 방송법 마련이 상반기 중에서 9월로 3개월만 늦춰져도 위성에서만 1백억원 가까운 손실이 생긴다고 주장한다. 위성 발사에 들인 비용과 위성의 수명, 채널 임대료로 받을 수 있는 돈까지 생각하면 무궁화 1, 2호 위성의 위성방송 중계기가 하루 공전하는데 약 1억원씩 손해라는 계산이다.

3년전에 쏘아 올린 무궁화 1호 위성은 본격 위성방송 실시 전에 4년의 수명을 다할 가능성도 크다. 그렇게 되면 무궁화 1호 위성의 방송부문 투자비 2백15억원은 앉아서 날리는 셈이다.

위성방송업계도 표류중이다. 머독과 합작해 위성방송사업을 벌일 계획을 세웠던 데이콤새틀라이트미디어 (DSM) 의 한 임원은 "현재 본격적인 사업을 펼치지 못한 채 조사연구만 진행중" 이라며 "법안이 빨리 통과됐다면 보다 효율적으로 사업을 추진할 수 있었을 것" 이라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종합유선방송위와의 통합과 역할 변모로 모습이 크게 바뀔 방송위원회에서도 "조직이 어떻게 될 지 모르는 상황이라 불안감이 계속돼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는 고백이 나오는 정도다.

현재 여야는 문화관광위 소속 의원들이 방송위원 구성방법.방송사업의 참여자격 등 주요 골자만 마련해 놓았다. 이를 바탕으로 구체적인 법조문을 만드는 작업은 채 끝내지도 못했다.

게다가 당장 눈앞에 닥친 지방선거로 방송법 준비 작업은 뒷전에 밀렸다. 또 6월초가 되면 현재 문화관광위 소속 의원들이 일부 교체되면서 현재 기틀을 마련한 1차안이 다시 바뀔 가능성도 있다. 결국 6월 임시국회에서도 법안 상정이 불가능한 실정. 9월 정기국회로 넘어가야 한다는 얘기다.

여야가 방송법 마련을 미루는 것에 대해 학계의 시선도 곱지 않다. 그간 수많은 방송법 관련 토론회에서 각종 정책방안이 나왔으니 그 중에 적절한 것만 골라도 벌써 법안이 마련될 수 있었다는 주장이다. 따라서 의원들이 본업인 정책수립보다 정계개편.선거 등 세력다툼에만 급급해 방송법이 늦춰졌다는 지적이 많다.

서정우 (徐正宇) 연세대언론대학원장은 "방송법 지연은 관련 의원들의 '직무유기' " 라고 강하게 비판한 뒤 "방송법이 늦춰짐으로 해서 위성방송 등 관련 업계가 입는 막대한 손실을 생각해 지금이라도 하루 빨리 법을 제정해야 한다" 고 촉구했다.

권혁주 기자

〈woong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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