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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정복 어디까지 왔나]'신약'의 실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6면

20세기 최대 난치병인 암 (癌) 은 정복될 것인가. 최근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암치료제 안지오스타틴과 엔도스타틴 개발은 수년내로 암이 정복될 것이라는 성급한 기대를 불러 일으키게 한다.

그러나 눈부신 현대의학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암치료는 금세기 의료계가 풀지 못한 최대과제. 이를 계기로 암정복을 위한 의료의 현주소와 미래를 조명해본다.

"위장을 모두 제거하는 암수술을 받은 후 20개월간 정기검진에 아무 이상이 없었는데 열흘전부터 배가 점점 불러왔어요. 진찰을 마친 담당의사 말이 지금 암세포가 복막에 퍼져 복수가 찬 상태라고 합니다.

항암치료를 받아도 길어야 6개월을 못넘긴다는데 새로 개발됐다는 신치료의 임상실험대상이 될 방법이 있나요?" K씨 (남.29) 는 본지에 안타까운 사연을 털어놓았다.

암이 죽음을 불러일으키는 가장 큰 이유는 K씨의 경우에서 보듯 암세포 전이 (轉移) 때문. 세포의 돌연변이로 신체의 한 부위에서 발생한 암은 혈관을 만들어 영양을 공급받으며 독버섯처럼 빠르게 번져나간다.

일단 전이된 암세포도 크기가 2㎜가 넘으면 스스로 새로운 혈관을 만들어 영양분 (혈액) 을 공급받고 자라난다.

이번 하버드의대부속 소아병원 주다포크만 박사가 쥐실험에서 성공한 안지오스타틴.엔도스타틴이란 약물은 바로 이 암세포를 먹여 살리는 혈관생성을 막아 영양공급로를 차단하는 약 (그림참조) 이다.

정상세포는 혈관 생성을 자극하는 안지오제닌.TGFα.β등의 물질과 이를 억제하는 안지오스타틴.헤파리네이즈.IFNα.β등의 물질이 균형을 이루며 유지되는 반면 암세포는 혈관생성물질이 비정상적으로 증가해 이 균형이 깨지면서 신생혈관이 빠른 속도로 자란다.

의학계에서는 이번에 개발된 약물이 기존의 항암치료제와는 달리 부작용이 적을 것으로 기대한다. 기존의 항암제는 세포의 DNA 합성방해.세포분열억제 등으로 암세포를 죽이거나 자라지 못하게 하는 것. 이때 암세포가 가장 큰 타격을 받긴 하지만 항암제로 인한 정상세포 손상도 심각하다.

"병 고치려다 병 얻을 줄 누가 알았겠어요." 백혈병 환자로 항암치료를 받다 치명적인 뉴모시스티스카리니 폐렴에 걸린 C군 (9) 의 어머니는 뼈만 앙상한 아들의 손을 붙잡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항암제가 혈액암세포뿐 아니라 백혈구 등 정상혈액 세포까지 파괴하는데 C군은 손상된 백혈구가 미처 회복되기 전 이 폐렴에 걸린 것.

'기적의 약' 안지오스타틴.엔도스타틴은 이론상으론 세포의 손상없이 혈관생성만을 억제하기 때문에 정상세포 손상없이 계속 혈관을 만들어 내는 암세포만 고사시키게 된다. 실제로 이번 동물실험에선 부작용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아직 안심은 이르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 상처가 났을 경우 혈관이 빨리 재생되지 않아 상처회복이 늦어질 수 있는데다 사람에게 투여했을 때 출혈성 경향이 나타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기 때문.

따라서 쥐실험에 성공한 이 약이 암환자 치료제로 보편화될 때까지는 넘어야 할 산은 많다. 서울대의대 병리학 김우호 (金旴鎬) 교수는 "세단계에 걸친 인체실험에서 성공을 거둔다해도 환자들이 약으로 복용하려면 최소한 수년간의 기간이 필요할 것" 으로 추정한다. 따라서 현재 암진단을 받은 사람은 한시라도 빨리 기존의 치료법으로 치료받는 것이 상책.

서울대의대 내과 허대석 (許大錫) 교수는 "안지오스타틴과 엔도스타틴이 임상에 적용되더라도 현재의 치료법을 대신한다기 보다는 보완적으로 공존할 것" 이라고 전망했다. 예컨대 위암환자라면 처음 생긴 암덩어리는 수술로 제거해 없앤 후 안지오스타틴.엔도스타틴등의 신약을 사용해 암의 전이를 막는 치료가 되리라는 것이다.

황세희전문기자·의사

〈se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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