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근병 개인전]역사 응시하는 설치미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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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육근병 (42) 씨. 독특한 설치작업으로 국내외 미술계에서 주목받고 있는 그가 서울에서 5년만에 개인전을 연다. 국내에서는 오랜만에 만나보게 되지만 그동안 리옹 비엔날레 (95년) 를 비롯해 캐나다 파워플랜트 미술관 전시 (97년) 등 외국무대에서는 자주 작업을 소개해왔다.

14일부터 6월13일까지 국제화랑 (02 - 735 - 8449)에서 갖는 이번 전시는 국제 무대에서의 활동을 보여주는 구작과 신작들을 고루 보여준다. 구작도 국내에서는 첫선을 보이는 것이다.

대형 설치작업 '생존의 꿈' 은 지난 96년 일본 사이타마 현대미술관에서 전시됐던 작품. '현대미술의 올림픽' 이라는 독일 카셀 도큐멘타 (1992년)에 한국 국적 작가로는 처음 초청받아 선보였던 봉분 작업 뒤에 나온 타임 터널 작업의 연속선상에 있는 작업이다.

높이 210㎝의 원통형 철제 구조물인 타임 터널 속에 역사적 장면과 인물이 어우러진 비디오 영상을 보여주는 스크린을 설치했다. 이외에 신작으로는 역시 타임터널 작업의 하나인 '생존은 역사다' 와 '응시' '1998년4월19일 새벽' 과 이 작업의 기초가 된 드로잉들이 소개된다.

어떤 작업이든 인물이나 역사의 한 장면을 보여주는 영상작업은 항상 빠지지 않는다. 육씨는 "과거는 과거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에도 반복적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역사의 한 장면을 통해 말하는 것" 이라면서 "이 시간 속에 등장하는 인간의 모습은 생존의 의미를 돌아보게 만든다" 고 말한다.

'응시' 는 육씨 작업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해온 눈을 보다 직접적으로 드러낸 작업이다. 세 개의 둥근 알루미늄 판 가운데마다 눈동자 모양의 스크린을 설치했다.

세 개의 스크린은 각각 자연과 사람, 그리고 전쟁 이미지 같은 역사적 사실이 돌아간다. 육씨가 그렇게 눈에 집착하는 이유는 우주의 축소판이 사람, 사람의 극소체가 눈이라는 시각 때문이다.

이 눈을 통해 육씨는 시간과 공간을 아우르는 우주를 말한다.

또 한편으로는 관람객이 일방적으로 작품을 바라보는 구조를 거부하고 작품이 관람객을 응시하는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기도 한다. 이번 전시 출품작들이 이전의 작업들과 다른 점은 전시장 한 벽면을 스크린으로 사용하는 영상작업 '1998년4월19일 새벽' 에서 잘 나타난다.

모두가 잠들어있는 시간, 즉 잊혀진 시간인 새벽 2시에서 5시까지의 평화로운 자연의 모습을 연출없이 담고 있는 이 작품으로 암울한 과거보다는 보다 낙관적인 미래를 이야기한다. 개막일인 14일 오후 4시 작가와의 대화 시간에 이어서 퍼포먼스가 펼쳐진다.

안혜리 기자

〈hyer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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