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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공산당 핵심요인 박민영]스탈린 숙청때 총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1920~30년대 대표적 한인 공산주의자로 조선공산당 재건준비위 5인 중앙위원 가운데 하나였던 박민영 (朴珉英) 이 박 니키포르라는 이름으로 소련 NKVD (KGB의 전신) 극동담당 정보총책을 지내다 38년 5월9일 스탈린의 대숙청때 총살됐다는 사실이 처음으로 밝혀졌다. 이같은 사실은 최근 중앙일보가 입수한 그의 사망증명서와 박 니키포르의 아들 박 알렉산드르 (66)가 20여년간 추적해 확보한 자료 등을 박민영의 기록과 비교, 검토한 결과 드러난 것이다.

조선공산당의 핵심이었던 박민영이 소련 정보기관의 주요 간부로 근무했다는 내용은 알려지지 않았던 사실로 관련학계의 관심을 모을 것으로 보인다. 박 알렉산드르는 "아버지에 대해 확실히 알기 위해 장시간 추적한 결과 박 니키포르가 박민영임을 알게 됐다" 고 밝혔다.

연구자들도 20~30년대 니키포르라는 러시아 이름의 한인 공산주의자는 박민영 뿐이며 일본 자료에 있는 박민영의 복역 기록 (26년6월~29년8월) 도 박 니키포르와 일치한다고 밝히고 있다.

박민영의 NKVD 근무 증거로 아들 박씨는 ^65년 어머니 정정숙 (67년사망) 이 연금을 신청할 때 KGB가 "박 니키포르는 우리 직원이었다" 고 했던 점과^장관급이나 사회주의혁명에 큰 공을 세운 인물과 부인에게만 지급하는 연방연금을 탈 수 있도록 KGB가 조치한 사실을 들었다. 그는 92년 아버지와 관련된 기록검토 요청에 대해 KGB가 특별조치로 이를 가능케 한 점도 증거로 들었다.

박씨는 "KGB는 아버지에 대해 4~5박스나 되는 방대한 자료를 갖고 있었으나 극히 일부만 보여줬다" 고 말했다. 박씨에 따르면 박민영은 35년 스탈린이 스파이활동 강화를 위해 코민테른 요원중 일부를 NKVD로 이관시킬 때 이 기구의 극동담당 정보망 관리책임자로 임명됐다.

그가 코민테른에서 중국.조선.일본의 비밀조직 관리를 했으며 러시아어.프랑스어를 능숙하게 구사한 것이 발탁 배경이었다. 36년 서울에서 지하활동을 하라는 지시를 받고 국경으로 이동하던 중 블라디보스토크 NKVD 책임자가 대기지시를 전달, 기다리다 37년말 귀환명령에 따라 모스크바로 돌아오니 직속상관 슈피겔 글라스 국장, 슬루츠키 차관, 야고드 장관 등이 이미 체포된 상태였다. 그는 곧 출당됐고 38년 3월 '인민의 적' 으로 체포돼 5월8일 재판에서 사형이 언도되고 다음날인 5월9일 총살됐다.

모스크바 = 김석환 특파원 〈kshp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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