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닻올린 유로號의 장래]회의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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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유로 출범 이후 스페인이 경기후퇴를 겪는다고 치자. 과거 같으면 스페인 중앙은행이 통화량을 늘리고 금리를 낮추는 등 부양책을 폈겠지만 유럽중앙은행 (ECB) 이 통화정책을 독점하는 체제에서 이는 불가능하다. 결국 스페인은 전보다 훨씬 심한 경기침체를 겪을 것이며 이는 유로 안정에도 큰 위협이 될 것이다. " 유로에 대한 회의론의 핵심은 참가국 간의 경제여건 및 경제력의 차이를 조화시키기 어렵다는 점이다.

달러화의 단일 통화권으로 볼 수 있는 미국과 유로 랜드는 정책 수단.강도 면에서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지난 80년대 텍사스주 (州) 경기침체나 뉴잉글랜드주 부동산 거품붕괴 등과 같은 위기상황에서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 (FRB) 는 세금감면 등 효과적인 재정정책으로 경제 전체에 미치는 충격을 상당히 줄일 수 있었다.

그러나 유로는 ECB외에 별도의 재정정책 기구가 없어 국지적 위기 상황에 대처하기 어렵다.

위기 극복 장치들이 필요하지만 이는 유럽의 정치통합과 연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쉽사리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노동력 이동과 임금의 경직성도 문제다.

뉴욕의 실업자가 캘리포니아로 이동하는 것보다 이탈리아의 실업자가 언어.문화.전통이 전혀 다른 독일.네덜란드로 움직일 가능성이 훨씬 작다. 게다가 임금 수준도 지역별로 다르다.

또 경제성장률이 연 10%에 이르는 아일랜드와 2~3%에 불과한 독일.프랑스에 동일한 금리가 적용될 경우 아일랜드의 인플레 압력이 높아지는 등 단일통화의 부작용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정치.사회적 난관도 적지 않다.

유로 체제가 각국 국민들의 전폭적인 지지에서 출발하지 못하고 일부 국가 지도자들의 정책적 판단에서 비롯됐다는 사실은 유로의 안정을 해치는 요인이다. 실제로 독일.핀란드 등 북부 유럽으로 갈수록 반대 여론이 훨씬 더 높다.

이런 현상들을 견디다 못해 일부 국가들이 단일통화 탈퇴를 시도할 경우 '유로호' 는 자칫 좌초될 우려가 있다는 것이 회의론자들의 시각이다. 이밖에 참가를 유보한 영국 등도 유로 성공 여부의 확신이 없을 경우 예상외로 오랫동안 단일통화체제의 동참을 거부할 가능성마저 있다.

윤석준 기자

〈dani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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