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 개혁]'국민의 정부'출범 3달째…중간점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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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국민의 정부' 가 출범한 지 세달째 접어들었다.국가파탄 일보 직전에서 정권을 넘겨받은 새 정부는 각종 개혁조치를 추진하고 있다.

그 결과 외환위기를 넘기는 데는 일단 성공했다.그러나 지금은 주춤하는 형국이다.

거야 (巨野) 의 제동과 IMF체제의 제약 등이 그 주인 (主因) 으로 꼽히기도 한다.

하지만 개혁 추진과정과 방법론상의 문제점도 적잖은 이유다. 특히 "김대중 (金大中) 대통령의 개혁의지를 뒷받침할 컨트롤 타워로서의 개혁주체 (세력)가 취약한 게 문제" 라는 지적이다.

개혁의 현주소와 각종 난맥상의 원인을 진단하고 대책을 짚어본다.

새 정부의 개혁은 짧은 시간이었지만 엄청난 양적.질적 변화를 가져왔다. 전임 안기부장의 전격 구속과 할복소동이라는 전대미문의 곡절 속에 권력의 핵심인 안기부가 철저히 해부됐다.

줄을 잇는 도산과 정리해고로 실업자들은 쏟아지고 임금은 너나없이 깎였으며 평생직장이라던 공무원들도 내몰려 거리엔 긴장감마저 감돌고 있다. 재계는 강도높은 구조조정 요구와 각종 주문으로 몸둘 바를 모른 채 "살아남아야 한다" 는 절박감에 쫓기고, 환란 주범으로 몰린 금융권은 개혁의 칼날 앞에 숨을 죽이고 있다.

한마디로 혼돈과 긴장의 연속이다. 여권 핵심부는 "성과를 논하기는 이르나 대체적으로 순조로운 편" 으로 자평한다.

노사정 (勞使政) 이 만든 사회협약중 기업의 투명성 제고를 위한 사외이사제도가 도입됐고 결합재무제표 작성을 의무화한 법개정도 끝났다. 당초 5조원으로 합의됐던 실업대책 재원이 지난번 추경편성때 7조9천억원으로 늘어나는 등 총 90개 협약중 이미 19개가 이행됐다는 설명이다.

김대중 대통령과 5대 재벌 총수간 5대 합의사항도 계획대로 이뤄지고 있다고 강조한다.삼성중공업.한화바스프.한라제지.대상라이신 등이 이미 여러 형태로 외국기업에 매각됐고 현재 매각협상이 진행중인 기업도 상당수다.

김태동 (金泰東) 청와대경제수석은 "속성상 드러내놓고 할 수 없어 보이지 않을 뿐이지 하반기엔 가시적 성과가 나타날 것" 으로 자신한다. 부실은행 정리가 아직 뚜렷한 성과를 내지 않고 있지만 14개 부실종금사를 폐쇄한 것 등은 금융개혁의 시작이라는 설명이다.

"6월까지 각 은행의 경영개선계획 평가를 마친 뒤 부실은행에 대한 퇴출이나 합병을 유도, 늦어도 9월이나 10월엔 상당한 개편이 이뤄질 것" (李憲宰금감위원장) 으로 보고 있다. 외국인 투자유치를 위해 주식투자한도 확대 및 채권시장 개방, 토지취득에 따른 규제를 완화했고 국내기업에 대한 인수.합병 (M&A) 을 허용했으며 올 상반기중 적대적 M&A 허용 방침도 예고하고 있다.

그러나 불만스러운 대목도 있다.

정부조직개편, 구설수에 휘말린 일부 주요직 인사, 지지부진한 정치개혁 등이 그 예다. 경제부총리 부활론이 제기되고 정책혼선을 막기위한 당정협조가 새삼 강조되는 것도 개혁 방법론상의 문제점을 인식한 결과다.

경제개혁을 주도중인 한 고위 인사가 "새 정부 출범 직전 기업의 심각성을 간과해 금융개혁에 우선순위를 둠으로써 기업개혁의 적기를 두 달이나 놓쳤다" 고 아쉬워하는 대목은 시사하는 바가 적잖다.

구조조정만 하더라도 방법론에서 너무 많은 목소리가 나오고 지주회사 허용, 부동산 매매시 업무.비업무용 구분 철폐 등도 부처마다 의견이 달라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할지 모르겠다는 것이다.개혁의 원칙과 방향.의지는 있되 구체적 실행프로그램이 미진한 대목이 군데군데 눈에 띈다.

개혁을 이끌 주체로서 중추세력도 뚜렷하지 않으며 총괄적으로 개혁을 조망.조정하는 곳도 보이지 않는다. 모든 것을 金대통령에게 떠넘겨서는 곤란하다.

문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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