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2월 12일 오후 7시40분쯤 서울 서초동 예술의 전당 오페라하우스.
가난한 예술가들의 삶과 우정을 다룬 푸치니의 오페라 ‘라보엠’ 공연이 열리고 있었다. 1막이 오른 뒤 10여 분이 지났을 무렵이었다. 시인 로돌포 역을 맡은 신모(54)씨가 원고지 뭉치를 무대 오른쪽 벽난로 소품에 밀어 넣었다. 함께 있던 마르첼로 역의 배우도 수십 장의 종이를 벽난로 안으로 집어넣었다. 크리스마스 이브 때 낡은 아파트에서 로돌포가 자신의 작품이 적힌 원고지로 불을 지피는 장면이었다. 신씨는 성냥불을 종이에 붙이는 시늉을 한 뒤 벽난로 안쪽으로 던졌다. 그러면 벽난로에 불이 붙은 것처럼 보이도록 조명을 비추는 게 정상이었다. 그러나 진짜 불길이 올랐다.
공연장 내부는 연기로 가득 찼고 관객들과 출연진 등 1800여 명은 대피했다. 불은 소방차 32대와 소방관 130여 명이 출동하면서 23분 만에 꺼졌다. 검찰과 경찰은 공연 출연진과 관객들을 상대로 화재 원인을 수사했다. ‘원고지를 태우는 장면에서 불길이 올랐다’(관객들), ‘무대 뒤 조명에서 불꽃이 튀었다’(배우들) 등 목격자들의 진술이 서로 달랐다. 대학교 성악과 교수인 신씨도 경찰 조사에서 “나의 실수로 불이 나지 않았다”고 혐의 사실을 부인했다. 경찰은 누전 가능성도 조사했다. 그러나 조명 등 전기시설을 살펴본 결과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을 확인했다.
서울중앙지검 형사3부는 신씨가 연기에 몰두한 나머지 성냥불을 제대로 끄지 않고 던져 불이 난 것으로 결론짓고,신씨를 불구속 기소했다고 8일 밝혔다. 그러나 신씨는 “나의 실수로 불이 났다는 검찰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재판 과정에서 다퉈보겠다”고 반박했다.
박유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