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거품 발생과 붕괴]엔高되면서 내수폭발·과잉투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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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지난 80년대 후반 일었던 일본 경제의 거품은 지금까지도 후유증이 남을 만큼 심각하다. 거품 발생의 씨앗은 85년 9월의 플라자 합의때 뿌려졌다.

미국의 쌍둥이 적자 (무역적자.재정적자) 를 해결하기 위해 선진7개국 (G7) 재무장관들은 달러 약세에 합의, 엔화 가치는 급등하기 시작했다. 당시 달러당 2백50엔이었던 엔화 가치는 87년 5월 1백25엔으로 뛰어올랐다.

엔고로 수출이 주춤거리자 일 정부는 불황 대책에 나서 86년부터 확대 재정 정책과 함께 두 차례에 걸쳐 중앙은행 재할인율을 연 5%에서 2.5%로 끌어내렸다.

엔고로 수입 원자재값이 내리고 초 (超) 저금리로 돈이 넘치면서 기업들은 내수로 눈을 돌렸다. 국내 경기가 폭발하면서 과잉투자가 시작되고 뭉칫돈은 부동산.주식으로 흘러들어갔다.

닛케이 (日經) 평균주가는 86년말 1만4천엔에서 89년말 3만7천엔대까지 치솟았다. 90년 도쿄의 지가 (地價) 는 85년 대비 2.4배나 올랐다.

부동산 거품은 개인.건설회사들이, 주식시장 거품은 금융기관들이 불을 질렀다. 잘못된 정책판단으로 거품을 발생시킨 일본 정부는 거품 붕괴의 주역도 맡았다.

일본은행은 89년 12월부터 두 차례에 걸쳐 재할인율을 연 2.5%에서 6%로 인상시키는 등 금융긴축에 들어갔다. 주가는 곧바로 폭락으로 치달았다. 대장성.일본은행이 금융기관의 부동산 대출에 대한 창구 지도를 강화하자 땅값 거품도 빠졌다.

거품은 경제활력을 촉진시키고, 세수를 늘여 재정을 건전화시키는 순기능도 있다. 일본의 경우 90년 적자 국채가 제로를 기록했고 달러표시 1인당 국민소득은 미국을 능가하기도 했다. 그러나 기업에는 과잉설비.과잉재고, 금융기관에는 부실채권 등 경제 전반적으로 심각한 부작용을 낳았다.

도쿄 = 이철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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