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레니엄 버그]기업 절반이 무대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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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당장 회사 굴릴 돈도 없는데 2000년 컴퓨터 장애 문제를 걱정할 여유가 어디 있습니까. " 국내 기업중 절반 이상이 불과 1년8개월여 앞으로 다가온 '밀레니엄 버그' 에 거의 무방비 상태인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중소기업이나 증권.보험 등 제2금융권은 아예 손을 놓은 상태다.

정부도 인식.재원 부족으로 제도 정비나 지원에 소극적이라 자칫하다간 개인생활은 물론 각종 경제활동의 차질이나 행정마비 등 심각한 부작용이 우려된다.

산업자원부가 최근 자동차.반도체 등 12개 업종 2백66개 업체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절반인 1백33군데가 대책은 생각지도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전력.포항제철 등 주요 공기업도 사정은 비슷해 작업에 착수한 곳은 절반에도 못미치고 있다. 산자부 백만기 (白萬基) 산업기술국장은 "특히 중소기업들은 경영자의 인식 부족에 자금난 등이 겹쳐 엄두도 못내고 있다" 고 지적했다.

그래도 은행은 33개중 31개가 수정작업에 들어가는 등 사정이 조금 낫지만 제2금융권에선 손도 못대고 있다. 최대 걸림돌은 이 작업에 들어가는 엄청난 돈을 어떻게 마련하느냐는 것. 전문가들은 국내에서 밀레니엄 버그를 퇴치하는 데 드는 비용을 정부.민간 합쳐 8천3백억원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이는 데이터베이스를 수정하는 데 드는 기본비용에 불과하고 실제로 기업 자동화설비 등 산업 전반에서 발생하는 문제 해결엔 수조원이 필요한 것으로 알려졌다.

산자부 분석에 따르면 전국 3천여개 중소기업에서만도 총 9천억원 가량이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기업들은 심각한 자금난으로 대책 마련은 엄두도 못내는데다 정부 지원도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정부는 당초 올해 이 부문에 불과 57억6천8백만원을 배정했다가 뒤늦게 심각성을 깨닫고 5백억원을 추가 배정하겠다고 나선 정도다.

한 전문가는 "이 문제를 내년까지 해결하지 못하면 여러 분야에서 돈으로 환산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것" 이라면서 "우선 기업이 서둘러 대책 마련에 나서는 한편 정부도 자금.기술 지원을 확대해야 할 것" 이라고 지적했다.

국제 전문가들은 밀레니엄 버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경우 전세계적으로 6천5백억달러 정도의 피해가 날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이민호·박영수 기자

◇밀레니엄 버그 = 컴퓨터가 두자리 연도 (예 : 99년) 만 인식할 수 있어 2000년이 되면 1900년인지 2000년인지를 분간하지 못해 비행 스케줄.병원 의료기록.은행 이자계산에서부터 최첨단 군사작전에 이르기까지 각종 전산망에 심각한 장애가 오는 사태를 말한다. 최근엔 이를 Y2K (Year2000) 라는 약칭으로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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