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준비물 없는 학교 효과 만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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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곡초등학교 4층에 마련된 학습준비물 지원 센터에서 학부모들이 준비물을 정리하고 있다. 이 센터에는 물감·조각칼에서 체조용 리본까지 200여 종의 준비물이 갖춰져 있다. [이현택 기자]

5일 오전 10시 서울 노원구 상계10동의 상곡초등학교 5학년 1반 교실. 학생 20여 명이 붓과 먹물을 이용해 꽃을 그리는 미술 수업을 앞두고 있었다. 그러나 책상 위에는 팔에 먹물이 튀는 것을 막아 주는 토시와 앞치마만이 눈에 띄었다. 정작 수업에 필요한 붓과 먹물·화선지 등의 준비물은 보이지 않았다.

잠시 뒤 의문이 풀렸다. 학생 4명이 가로·세로 1m가량의 나무상자를 들고 왔다. 상자 안에는 붓·먹물·화선지에 물통과 플라스틱 쟁반까지 가득 들어 있었다. 수업을 앞두고 4층에 마련된 ‘학습 준비물 지원센터’에서 가져온 것이다. 학생들은 도구와 재료를 서로 나눈 뒤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상곡초등교는 준비물 걱정에서 자유로운 이른바 ‘준비물 없는 학교’다. 가위·연필 등 기본 학용품을 빼고 모든 수업 준비물을 학교에서 마련해 학부모의 부담을 덜어 주자는 취지에서 시작했다. 비용은 노원구청이 전액 지원한다. 학생 1인당 연간 2만원가량 된다. 노원구에는 상곡초등교 외 3개 초등교가 4월부터 준비물 없는 학교를 운영 중이다.

올해 초 5000만원을 지원받은 상곡초등교는 4층에 학습준비물 지원 센터를 만들었다. 이 안에는 물감, 목공용 풀, 조각 칼 등 미술용품은 물론이고 실로폰, 컴퍼스, 소고, 원고지, 리본 체조용 리본까지 200여 종의 준비물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 수업 시간에 맞춰 준비물을 챙겨 가고 남는 물품은 반납해 낭비를 줄인다. 센터 정리는 교사와 학부모들이 함께 한다. 센터에는 컴퓨터 4대와 컬러프린터·코팅기·제본기도 설치돼 교사들이 손쉽게 보조 교재를 만들 수 있다.

학생과 학부모들의 만족도는 높다. 5학년인 김남균(11)군은 “바느질 수업이 있는 날이면 동네 문구점의 바느질 세트가 동이 나 엄마와 함께 다른 동네까지 가 사 와야 했다”며 “지금은 그런 걱정이 없어졌다”고 말했다. 6학년 문준용(12)군도 “준비물을 챙겨 오지 못해 친구들한테 빌려야 했던 불편이 사라졌다”고 했다. 주부 박영미(38)씨는 “학교에서 다 준비해 주니 부담이 훨씬 줄었다”며 만족스러워 했다.

수업 내용도 한결 충실해졌다. 김정화(34·여)교사는 “예전에 ‘가족 얼굴 꾸미기’를 하면 학생들의 준비물 부담을 우려해 색종이 등 4~5종의 재료만 사용했다”며 “지금은 골판지·스티커 등 10여 가지 준비물을 나눠 주고 마음껏 꾸밀 수 있게 한다”고 설명했다. 준비물 구매는 도매상을 통하는 것이 원칙이다. 하지만 지역 문구점을 배려해 찰흙, 플라스틱 접시 등 일부 재료는 학교 인근에서 구입하기도 한다.

노원구는 하반기 중 1억5000만원을 추가로 배정해 3개 초등교를 ‘준비물 없는 학교’로 만들 계획이다. 장기적으로는 관내 초등교 42개 전체에 확대할 방침이다. 그러나 예산 확보가 문제다. 첫해에는 센터 시설비와 준비물 비용을 합해 학교당 5000만원이 필요하고, 이후에도 준비물 비용 2500만원가량이 든다. 이노근 노원구청장은 “예산 확보에 어려움이 있다”며 “서울시나 중앙정부 차원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현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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