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벤처창업 꿈 펴는 '교수 사장님' 는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1면

첨단 유전자감식과 염색체 진단시약 전문 벤처기업인 ㈜아이디진의 정연보사장은 아직 사장 직함이 찍힌 명함을 건네는 것이 어쩐지 어색하다. 올초까지만 해도 인제대 미생물학과 교수이던 그가 안정된 직장과 명예를 버리고 창업의 길로 뛰어든 것은 자신의 연구실적과 노하우를 사업과 연결시켜 보고 싶은 생각에서였다.

부산대 전자공학과 김재호교수도 이번 학기부터 휴직계를 내고 몇몇 제자들과 함께 고속영상처리시스템 개발 벤처기업인 ㈜MI의 사장으로 변신했다. 그는 "국내 처음으로 산업용 초고속영상검사장치를 만들겠다" 고 기염을 토했다.

대학교수들의 벤처기업 창업이 늘고 있다. 지난해 제정된 벤처특별법에서 '대학교수나 국.공립 연구기관 연구원들이 벤처기업을 설립하거나 임원으로 근무할 경우 3년이내의 휴직을 할 수 있다' 는 규정이 신설된 이후 가시화된 현상이다.

아직은 겸직.휴직이 많지만 최근에는 아예 퇴직하는 경우도 생기고 있다. 자본은 몇몇 가까운 사람끼리 돈을 모으거나 벤처캐피털 (자본) 이 밑천을 대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최근 활동에 들어간 ㈜셀로텍은 상아탑의 기술과 벤처캐피털이 만난 케이스. 벤처캐피털인 무한기술투자는 수원대 고분자공학과 홍영근교수가 환경오염 요소가 적은 레이온 제조기술을 가진 것을 알고는 그를 설득, 중소기업 사장.대기업 임원 등으로 구성된 에인절클럽과 연결시켜 회사를 설립하게 됐다.

고려대 기초과학연구소 이행우 연구교수가 김 서림 방지기술로 만든 이슬방지거울을 주력제품으로 동료들과 함께 설립한 ㈜벤트리는 이미 올들어 2백30만달러 (약 32억원) 의 수출 실적을 올렸다.

벤처창업이 공대 교수들의 전유물은 아니다. 최근에는 연세대.고려대.가톨릭의대 등의 약리.생물학 교수 8명이 공동으로 알츠하이머.파킨슨병 등의 치료제 개발을 목표로 하는 벤처기업 ㈜뉴로텍을 설립, 눈길을 끌었다.

그러나 교수들의 '외도' 가 쉽지만은 않은 모양이다. 한 국립대학 P교수는 "외국에 연구차 나갈 때는 본봉 일부가 지급되지만 벤처기업 설립을 위한 휴직은 아예 호봉승급도 인정되지 않아 불리하다" 고 말했다.

정연보 사장은 "정부가 교수의 창업을 활성화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직접 해보니 행정절차가 너무 복잡하고 일선창구에서는 지원이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 고 지적했다.

하지만 미국 등 선진국의 경우 아예 대학 당국이 제도적으로 교수들의 창업을 지원하고, 이런 사례들이 경제 활력의 기본이 되는 점을 감안할 때 IMF시대를 맞은 한국에도 기술력을 가진 대학교수들의 창업이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홍병기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