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핵우산은 찢어진 우산’ 우려는 여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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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대 중반 북한의 핵·미사일 실험이 잇따라 성공했다. 소형 핵탄두 개발도 이어졌다. 2010년대 후반 대포동 4호 미사일의 사정거리는 미 서부 지역까지 확대됐다. 북한의 핵 위협에 남한 사회는 극렬히 분열되고, 미국도 뚜렷한 해결책을 내놓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북한군 특수부대가 백령도를 기습 점령하는 동시에, 남한 후방으로 침투했다. 비무장지대를 뚫고 인민군이 밀고 내려와 서울·경기 지역은 전쟁터로 변했다. 돌연 강원도 산악, 인적이 희박한 남한 지역에 핵폭탄이 터졌다. 북한의 핵 공갈이었다. 직후 김정일 위원장이 평양 방송에 나타났다. ‘미국이 한반도에 군사 개입을 않고 핵우산을 제공하지 않으면 미국 본토, 주일 미군, 일본을 공격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한국과 전 세계의 시선이 미국으로 쏠렸다. 미국은 1978년 존 브라운 미 국방장관이 11차 한·미안보협의회(SCM)에서 천명한 이후 되풀이해 온 핵우산 약속대로 북한에 핵무기를 쏠 것인가. 한·미 방위조약과 작계 5027에 따라 미국은 병력을 보낼 것인가. (이상은 북한의 공격을 가상해 만든 상황이다)

유명환 외교부 장관과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은 5일(현지시간) 워싱턴에서 만나 6월 한·미 정상회담에서 미 대통령이 문서로 한국에 핵우산을 보장한다고 합의했다. (로이터=연합뉴스)

2009년 6월 3일 서울 시내 모처. 외교통상부·국방부·국방연구원·관계 부처 공무원과 학자들이 모인 가운데 북한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에 따른 후속 조치를 논의하는 정책회의가 열렸다. 한 관계자는 “핵우산 보장을 위해 미국의 전술핵 몇 기라도 한국에 와 있으면 좋겠다는 말이 회의에서 나왔고 공감대가 형성됐다”며 “공개적으로 말할 수 없는, 솔직한 심정”이라고 했다.

북한의 2차 핵실험 직후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이 ‘핵우산’의 동의어인 ‘핵 확장 억지’를 말했음에도 91년 한반도에서 철수된 전술핵을 아쉬워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핵우산에 뚫린 구멍 때문이다. 국방연구소 김태우 국방현안연구위원회 위원장은 “북한의 위협이 가중된 지금, 미국이 언급하는 핵우산은 법적 구속력도 없고 취약하다”고 했다.

핵우산은 ‘핵 확장 억지 전략(Nuclear Extended Deterrence Strategy)’을 편하게 부르는 용어다. 예를 들어 북한 같은 적대국이 미국의 동맹인 한국이나 일본을 재래식 무기와 대량살상무기(WMD)로 공격하면 핵무기와 재래식 무기를 동원해 보복한다는 위협을 함으로써 공격을 예방한다는 전략이다.

북한이 ‘핵까지 동원해’ 공격할 경우 작계 5027의 ‘시차별 부대 전개 제원(TPFDD)’에 따르면 미군 병력 69만여 명, 함정 160여 척, 항공기 2000여 대 등의 전력이 한국에 파견돼야 한다. 과연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정부는 “미국의 핵우산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는 쪽이다. 지난 5일 유명환 외교부 장관과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의 워싱턴 회담 결과도 이를 보여 준다는 것이다.

양국 장관은 “6월 한·미 정상회담에서 핵우산 보장을 문건으로 선언한다”고 합의했다. 장호진 외교부 북미국장은 “지금까지 미 국방장관이 보장했던 약속을 대통령 수준으로 높인 것은 정치적 의미가 크다”고 했다. 그는 “미국의 핵우산 약속은 위협의 종류가 재래식이건 핵이건, 미국이 동북아뿐 아니라 다른 지역에 배치한 핵과 재래식 무기를 동원해 충분히 보장한다는 것”이라고 말한다. 송대성 세종연구소 소장도 “정상 간의 문서 약속이 국방장관끼리의 약속보다 훨씬 의미가 클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의심은 계속된다. 세종연구소 외교안보실장을 지낸 이춘근 이화여대 겸임교수는 “프랑스의 예가 핵우산 문제의 본질을 보여 준다”고 했다. 50년대 말 드골 프랑스 대통령은 ‘소련이 파리를 공격할 때 과연 미국이 뉴욕을 희생할 것인가’라는 의문을 제기했다. 대답이 “NO”라고 생각한 드골 대통령은 ‘빵보다 핵’이라는 구호 속에서 60년 2월 사하라 사막에서 핵무기 실험을 강행했다. 통일연구원 전성훈 선임연구원도 “미국이 서울을 보호하기 위해 로스앤젤레스나 워싱턴을 희생할 수 있는가”라고 묻는다. 핵무장을 한 대포동 미사일이 미국 본토를 공격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 미국이 작계 5027에 따른 개입을 결정하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장 국장은 “미국의 핵우산이 중국·러시아의 한국에 대한 핵 공격을 억지한다는 데는 동의하면서 왜 북한의 공격에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미군 69만 명이 핵 위험에 노출”
‘핵우산 보장’을 구현하는 방법이 구체화돼 있지 않다는 점도 문제로 꼽힌다.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에 대한 미국 핵우산은 북대서양조약 5조로 보장된다. 5조는 ‘체약국 한 나라에 가해지는 무력행사를 체약국 전체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 개별적 혹은 집단적 자위권을 발동함과 동시에 상호 원조를 한다’는 내용이다. 소위 자동 개입이다. 나토는 미국과 핵무기 매뉴얼도 공유한다. 회원국 국방장관들의 핵계획그룹(NPG)에선 핵 정책이 함께 논의된다.

일본의 경우 미·일 안보조약에는 자동 개입 조항이 없지만 실제 운용체계가 이를 보장한다고 김태우 위원장은 지적한다. 그는 “미·일은 사실상 합동군 방식으로 운용되기 때문에 핵우산이 자동 보장되는 형태”라고 말했다.

한국은 나토와 다르다. 한·미 상호방위조약 3조는 무력 공격을 받으면 이 공격이 ‘자국의 평화와 안전을 위태롭게 한다’고 판단될 경우 ‘각자의 헌법상 절차에 따라 행동한다’고 돼 있다. 자동 개입은 아니다.

오바마 대통령이 문서로 핵우산 약속을 천명하면 과거 핵우산 보장의 수준이 향상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이라크 전쟁과 아프가니스탄 전쟁 희생자 때문에 미국 사회가 벌이는 갈등을 고려하면, 69만 병력을 북 핵 위협에 노출시키는 데 미 의회가 쉽게 동의할지는 미지수다. 김 위원장도 “정상 간에 문서로 된 약속은 의미가 있지만 필요한 만큼의 법적 구속력은 여전히 없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런 의심 때문에 지난해 12월 국방연구원 내 비공개 북한군 세미나에서 외교부 당국자는 회의에 참가한 한미연합사 미 측 관계자에게 “공약만으론 핵우산을 못 믿겠다. 91년 미국의 핵무기 반출 이후 작계 5027에도 핵무기 운용이 반영돼 있지 않다. 핵우산 보장을 위한 한·미 협의 채널을 만들어야 한다”며 공개적으로 지적했다.

‘찢어진 핵우산’에 대한 대책으로 거론되는 방안이 ‘전술핵 재반입’이다. 91년 9월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은 소련과의 합의에 따라 해외의 지상·해상 배치 핵무기 완전 철수를 발표했고 한국에서도 그해 말 완전 철수됐다. 공중 발사 핵무기만 예외였다.

군 관계자는 “당시 미·소 합의를 위반하지 않는 공중 발사 전술 핵무기를 재도입할 필요가 있다”며 “공중 발사 핵무기도 평소에는 지상 관리를 하기 때문에 육상 배치나 다름없이 핵우산 효과가 있다”고 했다. 그는 “전술핵 10여 기면 북한 핵 위협을 무력화할 것”이라고 했다.

송대성 원장, 전성훈·이춘근 박사 등도 “전술핵의 재반입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2006년 북한의 1차 핵실험 뒤에도 전직 국방부 장관 등 군 원로들은 “미국의 전술핵을 재반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에 “핵우산 성의 보여 달라”

그러나 전직 국방부 장관 출신인 한나라당 김장수 의원과 외교부 장관 출신인 민주당 송민순 의원은 “군사 기술이 발달한 요즘, 어디서든 핵우산을 펼칠 수 있으므로 굳이 한국에 전술핵을 재배치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다만 핵우산의 핵심이 동맹 강화에 있다는 점에 대해선 대개 일치한다. 윤덕민 외교안보연구원 안보통일연구부장은 “핵우산 보장은 전술 핵무기 반입 같은 것이 아닌 동맹 강화로 해결할 사안”이라고 한다. 그는 “일본과 미국은 2006년 핵우산 매뉴얼을 만들기 위한 의견 교환 단계까지 갔다”며 “믿는 상대에겐 핵우산은 자동으로 펼쳐진다”고 했다.

문제는 ‘김대중과 노무현 정부를 거치면서 한·미 동맹이 약화됐다’는 평가다. 이런 시각 때문에 ‘2012년 전작권 환수와 한미연합사 해체는 동맹의 끈을 헐겁게 만들어 핵우산의 틈이 더욱 넓어질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이와 관련, 최근 정부는 정상회담 준비를 위해 준비단을 미국에 보내고 있다. 한 관계자는 “청와대도 한·미 동맹 강화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안다”며 “준비단은 미 측에 한·미 정상회담에서 핵우산과 관련된 성의를 보여 주지 않으면 동맹관계가 위험해진다는 점을 주지시켰고 미 측도 이해한다는 반응을 보인다”고 말했다. ‘찢어졌다’는 미국의 핵우산이 어떻게 수선될지 한·미 정상회담이 주목되는 이유다.

안성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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