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 의사가 쓰는 性칼럼] '죽부인 외도' 황당사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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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이게 무슨 변고란 말입니까?”

50대 초반의 성공한 사업가 P씨는 최근의 해프닝에 당혹해했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다며 필자에게 고백한 사연은 거래처에서 선물한 죽부인 때문에 벌어졌다.

날씨가 더워진 요즘, P씨는 주말엔 죽부인을 안고 낮잠 삼매경에 빠진다. 대나무를 속이 비도록 엮은 죽부인은 공기가 잘 통해서 여름철 숙면에 제격이다. 그런데 최근 젊은 시절의 상징인 몽정을 두 차례나 겪은 것이다. 중년 나이에 겪다 보니 한편으론 회춘한 듯 기뻤지만 한편으론 몸에 무슨 문제가 생겼나 당황스러웠다는 P씨. 더군다나 가정에 충실하며 단 한번도 외도 한 적 없는 ‘성실남’이 꿈 속에서 요부와 격렬한 성행위에 몽정까지 했으니 마치 불륜을 저지른 듯 묘한 죄책감까지 들었다는 것이다.

간단히 논하자면, 죽부인은 더운 여름 날씨에 체온을 낮춰 숙면에 도움된다. 숙면은 성기능의 필수 요소다. 남성은 깊은 수면 후반부의 ‘REM’ 수면 시 성기에 혈류량이 증가하는 수면발기 현상이 반복된다. 이는 발기 조직이 재생하도록 도와 성기능이 건강해진다.

또한 죽부인은 숙면뿐 아니라 선선한 공기가 통하게 해주니 고환 부위의 발열에도 도움이 된다. 고환은 체온보다 낮은 온도에서 정자나 남성호르몬을 생산한다. 고환이 몸 밖에 나와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애초에 죽부인이 성기능을 위해 고안된 물건은 아니지만 전문가의 시각엔 여러 장점을 가진 생활의 지혜라 하겠다. 물론 단순히 죽부인을 끼고 자서 P씨의 성건강이 갑작스레 향상된 것은 아니다. 그는 규칙적으로 운동하고, 숙면을 취하는 편이며, 술·담배를 자제한다. 체중관리에도 애쓸 뿐 아니라 스트레스에 잘 대처하는 등 건강관리도 잘 해왔다. 게다가 아내와 정서적인 친밀감을 가지고 성관계도 적절히 유지해오는 등 성건강과 관련해 여러 모로 긍정적인 생활태도를 갖고 있었던 것이다.

죽부인의 사례와 달리 평소 너무 뜨거운(42도 이상) 온도의 목욕이나 몸에 달라붙는 속옷, 통풍이 잘 안 되는 청바지 등을 즐기는 습관은 성기 온도와 관련해 그리 좋을 리 없다. 또한 무더운 여름철엔 성기 주변도 습해지다 보니 남성들은 음부백선 등 피부질환, 여성들은 곰팡이 감염 위주의 질염에 자주 걸린다. 게다가 성기나 항문 주위에 땀이 차면 세균 번식이 쉽고 악취도 잦아 성행위 시 불쾌감이나 성 기피 현상까지 생길 수 있다.

흔히 노출이 심한 여름엔 성욕이 왕성할 것 같지만, 시각적 자극만 많을 뿐 실제 성욕은 감퇴하는 경우가 흔하다. 특히 계절별로 비교해도 여름철은 성욕과 성기능을 관장하는 남성호르몬의 생산이 처지는 시기다. 이런 시기엔 더 강한 노출로 상대를 유혹하거나, 성 흥분을 위해 더 강한 자극을 요구하는 것보다 성기를 선선하게 관리하고 습기가 차지 않도록 하는 것이 건강과 행복의 지름길이다.

죽부인을 안고 자다 몽정을 했다고 P씨는 묘한 죄책감을 느꼈지만, 더운 여름날에 모자란 성욕을 채우겠다며 외도를 일삼는 것보다 백 번 나은 일이다. 고려 말의 문인 이곡이 지어 전해져 오는 설화 ‘죽부인전’에서도 죽부인은 절개를 상징했지 외도를 의미한 것은 아니니 말이다.

강동우ㆍ백혜경 성의학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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