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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우석 칼럼] 진리는 누구도 독점할 수 없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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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요즘 뒤숭숭하다는 이가 많다. 왜 이리 갈등·소란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지 마치 홀린 듯하다는 하소연도 여러 차례 들었다. 지난 주 이시형 박사의 행복 호르몬(세라토닌) 메시지도 그래서 소개해봤지만, 현실의 사회갈등은 현실로 풀어야한다. 여기서 물어보자. 왜 노무현 전 대통령의 개인적 비극이 사회적 후폭풍으로 커졌는가. 그를 순교자로 추앙하는 데 더해 ‘민주주의 후퇴’를 비판하는 대학교수 시국선언은 또 뭔가.

당장 논란인 민주주의를 놓고 보자. 객관적으로 한국 민주주의는 지구촌 최상위 수준이다. 프리덤하우스에 따르면 우리는 ‘종합지수1.5’로 일본과 같다. 국민소득 5만 달러라는 싱가포르도 부분자유국가(지수 4.5), 즉 우리의 1970년대에서 딱 멈췄다. 그럼 뭐가 문제인가? 좌파와 우파가 바라보는 민주주의가 조금씩 다르다는 얘기일까? 내가 아는 한 그 분기점은 안토니오 그람시다.

『감옥에서 보낸 편지』로 유명한 그람시는 헤게모니 이론으로 유명하다. 권력이란 물리적 힘만큼 대중의 마음(동의)을 얻어야 완성된다는 주장인데, 이 말에 쾌재를 부른 건 70년대 민중문화운동그룹이다. 『창작과 비평』등 각종 매체와 문학을 장악한 진보진영은 산업화의 가치를 비판하며 보수권력의 헤게모니를 잠식하기 시작했다. 이후 80년대 사회과학의 시대란 것도 실은 좌파의 정치투쟁이 승기를 잡은 계기였고, 지식대중이 빠져 들어갔던 과정이다.

진보진영은 산업화는 물론 건국과정까지 부인했다. 민중·민족을 깃발로, 나가도 너무 나간 것이다. 그런 유사(類似)사회과학을 담은 책 『해방 전후사의 인식』을 사람들은 진실·진리라고 믿기 시작했다. 지금도 그렇다. 즉 산업화를 주도해온 보수권력은 현실역사에서는 승리했으나, 대중의 마음을 얻는데 실패한 채 오늘에 이르렀다. 유감스러운 것은 일방적인 좌파 인식을 전직 대통령이 취임초 연설에서 공식화했다는 점이다.

“해방 이후 역사는 기회주의가 득세하고 정의가 패배해온 과정이다.” 그런 비판의 패러다임은 아직도 대중의 마음에 촛불로 켜져 있다. 때문에 향후 어떤 보수정권이 들어서도 대중들이 거리로 나설지 모른다. 『스페인 내전』의 저자 앤터니 비버는 말했다. “스페인 내전에서 승리한 것은 프랑코가 이끌던 국민진영이었으나, 내전에 대한 해석을 독점한 것은 반대파였다.” 꼭 우릴 두고 한 말 같다.

점점 분명해지는 것은 좌파·우파가 산업화·민주주의·건국과정에 대해 합의를 보지 않고서는 사회 안정은 쉽지 않다. 서로가 진리·민주주의를 독점한 듯할수록 편차는 커지고 상처는 덧난다. 진보·보수가 어떻게 서로의 마음을 무장해제하고 대타협을 도출해낼 것인가? 그게 이 사회의 최대 현안이다. 진단이 정확해야 처방도 뒤따르는 법인데, 표면만 보지 말고 구조를 함께 읽어내자.

 조우석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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