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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민주당의 기억력은 2개월도 못 가는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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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를 이용하는 민주당의 정략적 투쟁이 정국에 어두운 그림자를 던지고 있다. 민주당은 6월 국회의 개회를 막으면서 6·10 항쟁과 6·15 남북 공동선언의 기념일 등에 맞춰 진보 진영의 정당·시민단체 세력과 연대하는 대규모 집회를 계획하고 있다. 이런 움직임은 노 전 대통령 죽음의 본질과 어긋날뿐더러 사회 갈등을 푸는 방법론에서도 잘못된 것이다.

민주당은 노 전 대통령 서거가 정치 보복과 기획 수사에 의한 것이라 주장한다. 이는 국민의 기억력과 역사의 기록을 조롱하는 자기기만이다. 노 전 대통령이 부인의 금품 수수를 시인하는 사과문을 발표한 지난 4월 7일 민주당 노영민 대변인은 “민주당은 박연차 리스트가 여든 야든 한 점 의혹 없이, 한 사람의 예외 없이 공개되고 수사돼야 한다는 입장을 밝혀 왔다”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을 포함해 박연차 사건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정당하고 필요한 것임을 공식적으로 인정했던 것이다. 그래 놓고는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추모 열기가 예상외로 뜨겁자 이제는 ‘정치 보복이며 기획 수사’라고 말을 바꾸고 있다.

그동안 검찰 수사의 정당성에 대해선 민주당을 포함해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된 것으로 봐야 한다. 다만 수사 과정에서의 무리수 여부가 논란을 불렀고, 그에 대해 검찰총장도 일부 인정하고 있다. 민주당은 검찰 수사 개선 방안으로 공직부패수사처 설치, 대검 중수부 폐지, 피의사실 공표죄 처벌을 3대 검찰 개혁과제로 제시했는데 이는 국회에서 다룰 일이지 서울광장에서 소리칠 게 아니다. 민주당은 미디어 관련 4법과 비정규직법, 금산 분리 완화 관련법, 통신비밀보호법 등 정부와 한나라당이 추진하는 10개 법안을 10대 ‘MB악법’으로 명명하고 결사적으로 저지하겠다고 한다. 미디어법은 6월 국회에서 처리하기로 여야가 합의한 것이다. 금산 분리 완화는 이미 상임위를 통과한 것이며, 통신비밀보호법 또한 범죄 수사를 위해 휴대전화를 감청하는 방법론에 관한 것이다. 이런 법들이 노 전 대통령의 죽음과 무슨 관련이 있는가.

민주당은 노 전 대통령의 서거 바로 6일 전 ‘뉴 민주당 플랜’이란 걸 내놓으면서 좌우 이념의 틀을 벗어난 제3의 길을 모색하려 한다고 했다. 그랬던 민주당이 서거 정국의 열기에 도취해 다시 정치적 선동과 이념적 투쟁이라는 과거의 길로 돌아가고 있다. 대선·총선 참패를 통해 이 길은 ‘실패의 길’이었음이 증명된 바 있다. 민주당은 일부 조사에서 지지율이 한나라당을 앞서는 등 ‘노무현 효과’를 보고 있는데 실용적인 대안 대신 공허한 정치 투쟁에만 진력하면 이런 현상은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은 사회 각 부문에 과제를 던졌다. 정권은 국정을 쇄신해 민심을 수습하고, 국회와 검찰은 검찰 수사의 문제점을 개선해야 한다. 제1 야당 민주당이 할 일은 국회에 들어가 경제위기와 안보 문제에 대처하고 민생 입법에 주력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