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DMB 휴대전화가 독일 가면 TV?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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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보이지 않는 무역 장벽 … ‘HS코드’ 전쟁  HS코드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HS코드는 국제적인 상품 분류 체계다. 코드는 곧 돈이다. 코드 번호에 따라 관세율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수출국은 이왕이면 관세가 적은 코드를, 수입국은 관세율이 높은 코드를 선호한다. 보이지 않는 무역 장벽인 셈이다. 디지털 방송을 볼 수 있는 DMB 휴대전화가 대표적이다. 독일은 이 제품을 TV로 분류한다. TV는 관세율이 14%고, 전화는 0%다. 한국에 농산품을 수출하는 외국 회사들도 코드 비켜 가기를 한다. 농산물에 설탕이나 소금을 넣어 관세가 낮은 가공식품으로 인정받으려는 속셈이다. 분쟁이 늘어나자 관세청은 베테랑 직원들로 별동대를 꾸렸다.

851712와 852872.

난수표라고 오해하면 안 된다. 국제적인 상품 분류 번호인 HS코드다. 별 의미 없는 숫자 같아 보이지만 그 차이는 크다. 어떤 HS코드인지에 따라 관세가 수백억원 왔다갔다할 수 있어서다. 예컨대 HS 코드로 851712는 휴대전화고, 852872는 TV수신기기다. 문제가 불거진 건 디지털 멀티미디어 이동방송(DMB)을 볼 수 있는 휴대전화다. 독일은 한국산 DMB휴대전화를 ‘TV수신기’로 분류한다. TV수신기의 관세율은 14%다. 휴대전화는 관세를 물지 않는다. 한국은 이 제품의 주 기능을 전화라고 주장했지만, 독일은 DMB 시청을 핵심 기능으로 판단한 것이다. 관세청 관세평가분류원의 오상훈 과장은 “아직 독일에서 DMB가 일반화되지 않아 수출액이 많지 않지만 독일이 코드를 바꾸지 않으면 수출기업의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세계관세기구(WCO)는 9월 회의에서 이 문제를 다룰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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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S코드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코드 분류에 따라 관세율이 달라지면서 HS코드는 보이지 않는 무역 장벽이 되고 있다. 막는 쪽과 뚫으려는 쪽의 다툼이 끊이지 않고 있다.

전쟁의 승패에 따라 수출업체의 희비도 엇갈린다. 한 합작 상용차 업체는 2004년부터 남아프리카공화국에 덤프트럭을 수출했다. 그런데 성능이 너무 좋은 게 빌미가 됐다. 덤프트럭은 공사장을 중심으로 비포장도로에 다니는 게 일반적인데, 한국산 트럭은 고속도로 주행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남아공은 이 트럭의 HS코드를 870410(덤프트럭, 관세율 10%)이 아닌 870423(기타 트럭, 20%)으로 분류했다. 이 업체는 2007년까지 3년간 1200대를 수출했지만 관세 벽 때문에 최근엔 수출이 주춤한 상태다. 폴란드가 2007년 일반필름(6.5%)으로 분류했던 LG화학의 편광필름(특정 방향의 빛만 통과시키는 필름)은 WCO의 해석에 따라 편광필름 판정을 받아 수출 경쟁력을 높일 수 있었다. 편광필름에는 관세가 붙지 않기 때문에 연간 50억원 이상의 비용을 아낄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 제품을 수출하는 업체들의 공격도 끊이지 않고 있다. 관세가 많이 붙는 농산물이 대표적이다. 낙농품에 설탕을 넣어서 농산품이 아닌 가공식품으로 통관 신청을 하는 식이다. 가공식품은 일반 농산물에 비해 관세가 낮다. 고춧가루에 소금을 섞기도 한다.

한국 HS코드의 빈틈이 표적이 되기도 한다. 니켈·크롬 함량에 따라 품질이 달라지는 스테인리스 강판이 대표적이다. 정부가 니켈·크롬 함량에 따라 HS코드를 세밀하게 분류하지 않는 바람에 값싼 외국산 스테인리스 강관이 국내 고가품과 같은 제품으로 인정돼 국내 시장에서 유통되기도 했다. 그래서 정부는 올해부터 18개였던 스테인리스 강판의 분류를 56개로 세분화했다.

분쟁이 늘어나자 관세청은 지난해 HS코드 분쟁을 전담하는 ‘HIT팀’을 만들었다. 영어로 ‘HS관련 불편사항 해결사(Shooter)’란 뜻이다. HIT팀의 김성수 계장은 “분쟁 해결에 수년이 걸릴 수 있기 때문에 문제 발생 초기에 해결책을 찾고, 기능 융합 제품은 사전에 코드 분류에 대한 대응책을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영훈 기자

◆HS코드=국제적으로 통일된 상품 분류 체계로 모든 상품에 고유 번호를 부여하는 것. Harmonized commodity description and coding System의 약자로 1988년부터 적용됐다. 6번째 숫자까지는 국제적으로 동일하며, 7~10번째 숫자는 각국이 세분화해 쓸 수 있다. 국제 협약의 틀 내에서 특정 제품에 어떤 코드를 부여할지는 수입국이 결정한다. 이에 따른 분쟁은 세계관세기구(WCO)에서 조정한다. 소송이나 세계무역기구(WTO) 제소로 이어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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