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동서증권 미스터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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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언론을 믿고 투자한 사람은 어떻게 하란 말이냐" 지난달 걸려온 한통의 독자 전화는 증권시장을 담당하고 있는 기자에게 꽤 아픈 지적이었다. 금융당국의 인가취소 여부 결정을 며칠앞둔 동서증권측이 외국사와 활발한 인수협상을 진행중이란 기사였다.

이 독자는 바로 3천만원어치의 동서증권 주식을 샀으나 얼마뒤 금융당국의 인가취소설이 돌면서 주가가 곤두박질, 큰 손해를 입었다는 항의였다. 엉뚱한 루머, 작은 소식에도 요동치는 최근 우리 증권시장의 생리를 감안할때 어느 일방의 발표를 단순 전달하기 보다는 그에 대한 철저한 검증이 필요하다는 기자 본연의 직무를 새삼 확인한 때였다.

지난 20일 오후 동서증권측은 이번엔 외국사에 매각이 확정됐다며 계약을 체결한다고 발표했다. 여러 언론이 대서특필했다. 그러나 시점이 또 공교로웠다. 금융당국의 인가취소 여부 최종 결정이 이틀을 남겨둔 때였다. 오후5시에 한다던 조인식은 상례를 깨고 끝내 언론에 공개되지 않았다. 인수회사측이 언론공개를 꺼린다는 이유였다. 석연찮은 구석은 계속 이어졌다. 인수회사인 호라이즌 홀딩스사에 대해 동서증권측 누구도 자신있게 설명하지 못했다.

사장은 기자회견에서 이 회사가 미국계라고 했으나 실무진은 '외국계' 가 맞다고 정정했다. 몇천만원짜리 전세계약때도 집주인에 대해 꼬치꼬치 알아보게 마련인데 국적도 확인되지 않은 회사와 3천억원이 넘는 계약을 체결하는 상식밖 해프닝이 빚어진 것이다.

"20일을 시한으로 못박은 당국에 계약서를 급히 제출하려다보니 여러가지 미비점이 있었다. " 동서증권 관계자의 이같은 설명은 증권감독원측이 이날 제출했다는 계약서에 대해 "미심쩍은 부분이 많다" 고 밝혀 의혹만 불려놨다.

게다가 동서증권측이 이면계약이라며 밝힌 '당국의 인가취소 결정시 계약 무효' 조항에 이르면 혼란만 더해진다. 이는 '선계약 후영업재개 검토' 란 당국의 입장과 상치된다. 이를 두고 계약 파기의 책임을 금융당국에 미루려는 '자해공갈단식 협박' 이란 소리가 업계에서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물론 "협상에만 최소 6개월씩 걸리는 외국사 매각을 한두달안에 끝내라는 건 수술이 필요한 중환자에게 링거만 놓고 알아서 일어나라는 격" 이란 동서증권측 항변에도 일리가 있다. 업계 최고의 영업력을 자랑하면서도 계열사 빚보증 때문에 끝내 흑자도산한 '울분' 도 이해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자는 묻고 싶다. '시한부 생명' 을 빌미로 설익은 내용을 공표한 회사와 그것을 대서특필한 언론에 의해 보게 될지도 모르는 선의의 투자자들 피해는 누가 보상해줄 것인지.

이정재 〈경제1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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