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융합 시대 '방송통신위' 시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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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송통신위원회를 어떻게 구성해야 하느냐를 놓고 지난 13일 토론회가 열렸다. 발제자인 이남표 민언련 정책위원(오른쪽에서 둘째)은 "독립위원회 형태의 국가기관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이상복 기자]

신문.방송.통신. 다른 길을 가던 이들 매체가 하나로 뭉치고 있다. '미디어 융합'으로 표현되는 이런 추세는 현재 진행형이다. 디지털이 그 매개체. 휴대전화로 TV를 보고, TV로 쌍방향 통신을 하는 건 이제 낯선 일이 아니다.

선진국들은 미디어 융합에서 부가가치를 끌어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우리도 분위기는 무르익었다. 지난 8일 디지털TV 전송방식 논란이 끝남에 따라 홀가분하게 달릴 채비가 됐다. 정보기술(IT)에 이어 차세대 먹거리로까지 통하는 미디어 융합 산업. 어떤 준비를 서둘러야 하는가.

◇속도 내는 미디어 융합=지상파와 케이블.위성방송엔 요즘 휴대전화와 메신저 서비스를 활용한 프로그램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휴대전화를 통해 여론을 읽고, 시청자들의 의견을 받아 드라마의 줄거리를 바꾸는 식이다. 가장 기초적인 형태의 방송.통신 융합이다.

또 서울 강남구청과 강남방송은 지난 14일부터 서울 코엑스에서 'TV 정부' 시연회도 열고 있다. TV를 통해 민원서류를 뗄 수 있고, 리모컨을 누르면 119 구조요청으로 이어진다. 여론조사도 기본이다. 이 밖에 이미 게임.운세.날씨 등의 부가 정보를 제공하고 있는 위성방송 스카이라이프는 조만간 연동형 T-상거래를 도입할 예정. 드라마를 보다가 주연배우의 의상이나 목걸이 등을 바로 구매할 수 있게 된다.

산업 쪽은 발걸음이 더 빠르다. 'TU미디어'는 이동 중 방송을 볼 수 있는 위성 디지털미디어방송(DMB) 준비를 마쳤고, 삼성전자는 쌍방향 방송.초고속인터넷.유선전화까지 세가지 서비스를 단일 셋톱박스를 통해 지원하는 '트리플플레이'를 올 하반기 선보인다. 모두 세계 처음이다.

선진국에서도 신문.방송.통신의 경계선은 이미 허물어졌다. 스위스 '미디어 하우스'는 신문.통신.인터넷사업을 함께 하고 있다. 지방신문사가 통신사업에 진출해 뉴스 콘텐츠를 제공하면서 벌어들이는 수익이 회사 전체 수입의 40%가 넘는다. 미국 뉴욕 타임스도 얼마 전 디스커버리 체널을 인수하는 등 방송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현실과 제도의 격차=현실은 앞서가지만 정부.정치권의 미디어 융합에 대한 노력은 아직 미흡하다. 방송과 통신의 경계서비스를 놓고 방송위원회와 정보통신부는 아직 다른 방향을 보고 있다. 업계만 괴롭다. 위성DMB만 해도 서비스 준비는 끝났지만, 방송법 시행령 개정 작업이 마무리되지 않아 늦춰지고 있다.

방송 프로그램을 뒤로 되돌리거나 건너뛰는 주문형 비디오(VOD)의 경우 일부 케이블 업체에서 서비스를 시작했지만, 통신 쪽과 규제 기준이 달라 불만이 팽배하다. 케이블TV협회 관계자는 "'규제 일변도'(방송)와 '탈규제'(통신)의 간극이 커 같은 서비스를 제공해도 규제가 크게 다르다"며 "통신 마인드의 산업 정책을 펴달라고 방송사업자들이 아우성"이라고 말했다.

◇"방송통신위원회 설립 서둘러야"=최근 탄핵 관련 방송에 대해 사실상 심의를 포기(각하)하는 결정을 내린 뒤 방송위원회의 무능력.무소신.무책임이 다시 도마에 올랐다. 황근 선문대 교수 등 많은 언론학자는 "정치적 이해관계에 휘둘리는 방송위로는 미디어 융합시대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없다"며 책임 있는 새 기구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그 대안으로는 단연 방송통신위원회 설립이 꼽힌다. 이는 노무현 대통령의 대선 공약사안이기도 하다.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은 지난 13일 '방송통신위원회 추진 방안'을 주제로 토론회를 열어 이 문제를 공론화하기 시작했다. 발표자마다 안은 달랐지만 방통위 설립을 서둘러야 한다는 주장엔 이견이 거의 없었다. 학계에서도 공감대는 형성돼 있다. 요약하면 '정치적 독립성'보다 '정책의 책임성'이 더 강조돼야 하며, 중요한 건 "시간이 없다"라는 것이다.

김택환 미디어전문기자, 이상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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