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향소에 놓고 간 담배 하루 두 박스…서태지 팬클럽은 상주에 속옷 지원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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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국민장은 끝났지만 봉하마을엔 추모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전국의 분향소에 다녀간 추모객은 500만여 명, 이 중 봉하마을을 찾은 사람은 100만여 명에 달한다. 이러한 조문 물결은 수많은 화제를 낳았다. 분향소를 지켰던 참여 정부 인사들과 친노 정치인들을 통해 그간 알려지지 않았던 뒷얘기도 흘러나오고 있다.

우선 안 보이는 곳에서 다양한 봉사를 한 사람이 많았다. 문재인 변호사는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경황이 없는 아들 건호씨를 대신해 ‘맏상제’ 역할을 했다. 장례 일정 대책회의를 지휘하고, 유족과 상의하면서도 직접 차를 몰고 다니며 각종 궂은 일을 처리했다.

김만수 전 청와대 대변인은 ‘봉하마을 명예이장’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마을회관 방송실 마이크를 직접 잡고 장례식장 정리, 주차, 잃어버린 사람이나 물건 찾기 등을 안내했다. 마을 곳곳에 흐른 추모 음악을 직접 선곡하는 DJ·PD 역할까지 했다. 노 전 대통령의 ‘정신적 지주’로 불리던 송기인 신부가 레퀴엠 CD를, 조문 왔다가 자신의 노래가 나오는 것을 들은 가수 안치환씨가 갖고 있는 CD를 줬다고 한다. 장례식장에서 많이 흘러나온 노래 중에는 민중 가요 작곡가로 유명한 윤민석씨가 만든 ‘바보 연가’도 있었다. 그는 지난해 촛불 집회를 이끌었던 노래 ‘헌법 제1조’ 이후 한동안 활동을 중단했다가 서거 소식을 듣고 직접 노래를 만들었다고 한다.

노 전 대통령과 직접적 인연이 없는 봉사자도 많았다. 서태지 팬클럽은 수십만원 상당의 음료수를 조문객들에게 나눠 주고, 장례를 치르는 이들에게 속옷이나 스타킹 등을 보내는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또 노 전 대통령이 마지막 순간 찾은 것으로 알려져 많은 조문객이 분향소에 놓고 간 담배 양은 하루 두 박스 분량에 달했다고 한다. 여러 담뱃갑 안에는 “찾으시던 담배 이제야 올린다” 등의 글귀가 적힌 쪽지가 있었다. 편지들은 현재 봉하마을회관에 보관돼 있다

몇몇 정치인은 조문을 막은 일부 노 전 대통령 지지자들의 ‘정보력’에 혀를 내둘렀다. 누가 조문을 오는지, 그가 노 전 대통령과 어떤 인연이 있는지를 기가 막히게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유명 네티즌 출신 30대 사업가는 특히 노 전 대통령과 ‘불편한 인연’이 있는 정치인들을 족집게처럼 짚어내 조문을 막기도 했다.

마을 입구에서부터 주요 인사들의 출입 상황을 확인하는 이도 있었다. 그런 철저한 검증에 걸려 날아오는 물병을 감수해야 했던 이가 열린우리당 의장을 지냈으면서도 한나라당 활동 전력이 있는 이부영 전 의원이다. 한나라당 임태희 전 정책위의장은 의원 배지 없이 밤 12시가 넘은 시각 빈소를 찾아야 했다. 그는 일부 조문객이 부정확한 보도 등을 이유로 방송기자 등을 공격하는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조문을 했다. 이 밖에 1989년 평양을 방문해 ‘통일의 꽃’으로 불렸던 임수경씨, 서울대 총학생회장 출신으로 ‘386세대 벤처 신화’로 주목 받다 횡령 혐의 등으로 검찰에 기소됐던 이철상씨 등 유명 운동권 인사들도 봉하마을을 찾았다.

백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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