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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색으로 물든 ‘노무현의 추억’ … 국회, 문도 못 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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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6월 국회가 문을 여는 단계부터 진통을 겪고 있다. 국회법상 2·4·6월은 1일부터 임시국회를 개회토록 돼 있어 이미 국회가 열려 있어야 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라는 돌발 변수가 생기면서 개회가 늦춰지고 있다.

김형오 국회의장이 주재한 교섭단체 원내대표 회동이 3일 열렸다. 안상수 한나라당 원내대표, 김정훈 수석부대표, 김 의장, 이용경 선진과창조의모임 수석부대표, 이강래 민주당 원내대표, 문국현 선진과창조의모임 원내대표(왼쪽부터) 등이 자리에 앉고 있다. [뉴시스]


한나라당은 이제 애도 기간이 끝난 만큼 8일엔 임시국회가 시작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나라당 박희태 대표는 3일 의원총회에서 “6월 국회는 이미 2월에 여야가 합의한 것인데 약간의 상황 변화가 있다고 해서 (민주당이) 원천 무효라는 태도를 보이는 것은 정치의 정도가 아니다”며 “합의서를 모래알 위에 쓴 게 아니기 때문에 야당이 파기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김성조 정책위의장은 처리가 시급한 민생 법안 28개를 발표하면서 “가령 공무원연금법은 처리가 늦어질 때마다 하루에 12억원씩 손실이 발생하는 법안이다. 이런데도 정치적 이유만으로 처리를 늦추는 것은 있을 수 없다”며 야당의 협조를 요청했다. 한나라당은 이달 안에 처리하지 않으면 해고 대란이 발생할 수 있는 비정규직법, 6월에 처리키로 합의된 미디어법, 금산분리 완화를 위한 금융지주회사법, 세종시특별법 등도 시급히 처리해야 할 핵심 법안으로 꼽고 있다.

하지만 민주당은 정세균 대표가 제시한 이명박 대통령의 사과와 국정 쇄신, 법무부 장관·검찰총장·대검 중수부장의 파면, 박연차 검찰 수사 국정조사, ‘천신일 특검’ 도입 등의 요구가 먼저 수용돼야 국회를 열 수 있다며 맞서고 있다. 민주당은 서거 정국에서 조성된 ‘거리의 열기’를 배경으로 한나라당을 압박해 개회 협상에서 유리한 카드를 확보하겠다는 의도다. 특히 박연차 게이트에 연루된 현 정부 인사들에 대한 특별검사제를 도입하는 데 당력을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최재성·조정식 의원 등 초·재선 8명은 이날 성명을 통해 천신일 세중나모여행 회장과 한상률 전 국세청장에 대한 특검을 요구했다.

이날 김형오 국회의장 주재로 한나라당 안상수, 민주당 이강래, 선진과창조의모임 문국현 원내대표가 만난 자리에서도 여야는 팽팽한 입장 차이만 확인했다. 안 원내대표는 “8일부터 7월 7일까지 국회를 열어 민생·개혁법안과 안보 문제를 다뤄 국민에게 도움이 되는 국회가 되기를 바란다”며 “국정조사나 특검을 미리 조건으로 걸고 개회를 연기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이 원내대표는 “한나라당과 정부가 노 전 대통령 서거에 대해 ‘우리와 아무 관계가 없다’고 인식하는 태도에 공감할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며 “(민주당 요구에) 답을 주면 8일 문을 열겠다”고 맞받았다.

김 의장은 “지난 1년간 국민의 눈에는 국회가 낙제 점수였다. 이번 원내 지도부가 그것을 극복하지 못하면 국민 속에서 국회를 해체하라는 요구가 나올 것”이라며 양측의 양보와 타협을 당부했다. 그럼에도 민주당이 워낙 강공 일변도여서 당분간 개회 협상이 진척을 이루긴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김정하·임장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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