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현실' 반영못하는 경제정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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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요새 기업어음 할인이 안된다는데 정부에 무슨 대책이 있습니까. " "그럼요, 지난번에 발표한대로 이렇게 저렇게 하면 됩니다. " "그런데, 막상 금융기관 창구에 가보면 정부 얘기와는 딴판이라는 항의전화가 신문사에 자주 걸려오던데요. " "…. 솔직히 현장에서 벌어지는 아주 실무적인 내용을 모두 파악하기는 어렵습니다.직접 가볼 수도 없고. "

금융위기가 한창이던 지난해말, 기자와 경제관료의 대화 내용이다.경제정책은 대개 고시나 공무원시험에 합격한 뒤 공직에 몸담은 경제부처 공무원들이 만든다.십중팔구 민간분야 경험이 없다.

중요한 정책을 만들 때는 연구소나 학교에 몸담고 있는 학자들이 훈수를 둔다. 대부분 박사를 딴 뒤 줄곧 연구에 몰두해온 사람들이어서 현장감이 떨어지기는 마찬가지다. 이렇게 만들어진 정책은 언론사 기자들이 국민에 전달하고, 평가한다.기자들 역시 사태의 심각성이나 불편을 피부로 느끼지 못한 채 시간에 쫓겨 쓰는 경우가 다반사다.

순수 민간은 끼어들 여지가 별로 없는 셈이다.자연히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기 일쑤다.경제정책이 매번 별 효과가 없는 큰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최근 책임소재 문제로 한창 떠들썩한 외환위기도 바로 '정책 따로, 현장 따로' 식의 정책결정이 반복된데 하나의 원인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이런 문제는 새 정부 들어서도 그대로다.

"새 영종도 국제투자 자유도시 건설도 좋지만 기존 인프라부터 정비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예컨대 화물이 인천항을 통과하는데만 1주일 이상 걸려 외국인들이 질색한다는데요. " "…. " 모두들 새 정부에 많은 기대를 걸고 있다.

금융기관이나 관청에서 한번쯤 좌절감을 느껴봤다면 기대가 더욱 클 것이다.

정부 발표만 믿고 찾았다가 일선 창구에서 "나는 모르는 얘기" 라는 면박을 당하고나면 그 뒤에는 아무리 좋은 정책이 나와도 "또 그렇고 그런 얘기구나" 라고 등을 돌리게 된다. 현장감이 철철 넘치는 정책이 아쉬운 때다.

고현곤 기자 〈경제 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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