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일하는 부부]인문서적 전문 출판 문현숙·강인황부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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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한국 남성들은 '바깥 일' 이 아내에게 노출되는 걸 꺼린다.유교식 완고함에다, '가정은 가정 일터는 일터' 라는 분리의식이 강한 탓이다.그래서 부부가 같은 길을 가는 경우가 드물다.

그러나 전문직 여성이 늘고 고용불안 시대가 되면서 소규모지만 '부부사업가' 를 주변에서 자주 보게 된다.특히 여성들의 활동 공간이 비교적 넓은 문화사업 분야에 '모범적인 커플' 이 많다.그들중 두 팀을 찾아 비결을 들어보았다.

신생출판사인 이산을 꾸려가고 있는 강인황 (37).문현숙 (33) 부부. 서울 남대문 시장 건너편에 자리한 출판사가 그들의 터전이다.공간은 7평 남짓. 오전 9시에 출근해 오후 10시에 퇴근하기까지 하루 12시간 이상을 사무실에서 함께 보낸다.

지난해 여름부터 지금까지 3권의 책을 선보였다.재일교포 강상중 (도쿄대) 교수의 '오리엔탈리즘을 넘어서' , 미국 에드워드 사이덴스티커 (컬럼비아대) 교수의 '도쿄이야기' , 프랑스 장 - 노엘 노베르 (파리자유대) 교수의 '로마에서 중국까지' 다.

종수는 대단치 않지만 요즘같이 어려운 시절에 일반인이 즐겨 찾지 않을 무거운 내용을 산뜻한 표지와 꼼꼼한 편집에 담아 출판계의 주목을 받기 충분해 보인다.

특히 동아시아의 문화와 역사를 파고들며 이른바 전문출판의 길을 닦고 있다."우리를 포함한 동아시아의 정체성 문제를 계속 탐구할 작정입니다.

근대화 이후 우리의 삶이 서구문화에 끌려왔지만 자신에 대한 반성과 비전이 없이는 우리 문화의 지속적 발전은 애초부터 기대하기 힘들기 때문이죠. " 이런 취지에 맞게 앞으로 나올 책도 10여종.'거북이 걸음' 으로 한권 한권 펴낼 계획이다.그래서인지 출판에 대한 큰 욕심도 없다.

오직 양서만을 내겠다는 의욕뿐. 출판사 이름도 중국고전 '열자 (列子)' 에 나오는 '우공이산 (愚公移山)' 에서 따왔다.어리석은 자가 산을 옮기듯 우직한 마음 하나로 '책산' 을 만들겠다는 뜻이란다.

"종당 2천부만 소화됐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다음 책을 만들 제작비가 빠지거든요. 물론 저희 인건비가 빠진 계산이지만 인문서가 대중적으로 널리 읽히는 분위기 조성에 도움이 됐으면 해요. " 부부가 하는 만큼 두부 자르듯 업무가 나뉘지 않지만 기획은 주로 남편이, 편집은 부인이 맡고 있다.

영업은 부부가 함께 한다.경리 한 명을 구하려 했으나 갑작스런 IMF한파로 포기했다.궁여지책으로 부인 문씨가 컴퓨터 소프트웨어 '엑셀' 을 배워 간단한 계산이나 장부정리를 하고 있다.

결혼생활은 올해로 8년째. 남편은 연세대 앞에서 사회과학서점 '알서점' 을 운영하고, 부인은 한길사.돌베개에서 편집하다 지난 96년 8월 출판사 등록을 냈다.

생활의 주무대가 사무실이다 보니 경기도 일산 32평 아파트의 겨울철 관리비가 10만원이 겨우 넘는다고. 대신 매달 생활비 70만원보다 훨씬 많은 1백만원을 책 사는데 쓴다.

그래서 모은 책은 5천여권. 안방을 빼고 집안에 책이 빼곡하다. 이래저래 책과 떨어져선 한 순간도 살 수 없는 부부인 모양이다.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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