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에서]정치개혁-정계개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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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워싱턴에서 보는 한국 정치권은 영락없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다.누가 여당이고 누가 야당인지 서로가 헷갈리고 있다.

집권당 하는 짓이 의연하지 못하고 졸지에 야당이 된 지난날의 여당도 자신의 위상과 역할을 찾는 데 혼란을 겪고 있다. 하지만 경제난 극복과정에서 추진되는 폭넓은 개혁처럼 정치판의 생리를 바꿔놓을 혁신적 노력이 병행돼야 정계의 고통스런 '빅뱅' 을 피할 수 있다.정경유착이 금융위기의 원인 가운데 하나로 지적되는 상황에선 더더욱 경제개혁만으로 소기의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정치개혁의 요체는 당내 민주주의 실현에 있고, 깡패조직의 계보처럼 두목과 졸개의 연분으로 당이 움직인다면 당내 민주화는 요원하다.우리 정당들은 내실있는 정강 (政綱)에 바탕해 당원들의 당비나 기부금으로 운영되는 것이 아니라 유권자들의 정서에 춤추고 국민세금으로 연명하는, 좋게 보아 붕당 (朋黨)에 불과하다.

정치개혁은 정계개편과는 다르다.국민이 뽑은 정치인들이 유권자의 의사와 무관하게 철새처럼 옮겨다니는 풍토에선 자의적인 냄새가 풍기는 정계개편이란 말이 통할지 모른다.

그러나 정계개편은 정치개혁의 부산물일 뿐이다.정치개혁을 위해선 정치자금의 흐름에 '보이지 않는 힘' 이 작용해선 안되며 대통령과 정당의 관계도 새롭게 정립돼야 한다.

미국에선 대통령의 주요업무 가운데 하나가 정치자금 모금이다.짬만나면 전국을 누비며 민주당의 정치모금 행사에 참석한다.우리 실정에 대통령이 집권당 정치자금 모금에 나선다면 그 자체가 스캔들이지만 여야를 막론하고 정당이 자생력을 갖추려면 투명한 돈의 흐름을 막아선 안된다.

한편 클린턴 대통령은 정국운영과 정책을 놓고 자신이 속한 민주당내 지도부를 상대로 로비를 벌인다.지난 2년 균형예산과 복지개혁안 통과 당시 보았듯이 때로는 의회내 다수당인 공화당 지도부와 담합하기도 한다.

당내 불만도 있지만 대통령이 국민의 지지를 받는 정책을 추진하는 데 여야를 따질 겨를도, 이유도 없다.대통령이 정책홍보에 직접 나서고 또 소수당 지도부는 자신들의 정치철학을 담은 책을 출간해 유권자의 마음을 움직이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결국 정치개혁의 핵심은 '돈과 정책정당' 이다.마음이 딴 데 있는 이들간에 '대연합' 운운하기보다 여야의 공개경쟁을 부추기는 제도적 장치를 만드는 데 정치개혁의 초점이 모여야 한다.

길정우<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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